[감성노트] 노을과 달 기사의 사진
‘나는 절망적이야’ 사진작가 질리언 웨어링
저녁 무렵 한강 위로 홍색 주름을 길게 펼친 노을을 본 적이 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노을, 너의 모습이 서글퍼 보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새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저녁 무렵 차갑게 식어버린 빛으로 대지를 물들인 노을은 속으로 슬픔을 삼키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멋있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청승맞은 생각만 하는 것 같았는데, 선우정아가 부른 ‘city sunset’을 듣고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나만 힘든 건 아냐 / 모두 나름의 아픈 눈물 한숨 애써 숨기며 미소 짓지 / 저 노을처럼.” 이 노랫말처럼, 마음에서 피가 흘러도 “나는 괜찮아요”라며 억지웃음 짓고, 가족이 걱정한다며 울음을 속으로 삼키는 사람을 보게 되면 “당신은 노을이군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정월대보름날 밤, 차를 몰고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장모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는 말없이 밝게 피어오른 보름달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아내처럼 깊은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정월보름달이 저렇게 크고 밝은 건 세상의 모든 슬픈 소원들을 머금고 있기 때문일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달,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눈물어린 희망이 감춰져 있었던 거다.

우리는 달의 뒤편을 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한쪽만 보고, 달을 다 봤다고 여긴다. 달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는 한 번도 못 봤으면서, 달을 다 안다고 여긴다. 세상 사람들의 슬픈 기도를 다 받아먹어서 뚱뚱해져버린 달의 속도 모르면서.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도 겉만 봐서 알 수 없다. 울음을 삭이고,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가슴에 꽁꽁 묶어둔 채 가짜 웃음을 팔며 우리는 살아간다. 붉은 노을도, 밝은 달도, 애써 웃음 짓는 사람도 그 속에 숨겨진 슬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진다.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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