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주화] 십시일반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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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는 사내 독서모임에 나간다. 얼마 전 한 사람이 참석 여부를 알리는 걸 잊고 모임에 왔다. 10명이 모였는데 주문된 도시락은 9개뿐이었다. 누군가 “밥을 한 숟가락씩 떠서 나눠먹자”고 했다. 한 그릇에 각자 밥을 한술씩 담았다. 반찬도 담았다. 어떤 사람이 “이 밥이 우리 것보다 더 많네”라며 웃었다. 모은 밥과 반찬은 한 사람 식사로 넉넉했다.

그때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한자성어가 떠올랐다. ‘밥 열 숟가락이 한 그릇 밥을 만든다.’ 실업이나 구조조정 관련 보도를 볼 때마다 이 장면은 머릿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달고 솟구쳤다. ‘밥은 돈으로 구하고, 돈은 일할 때 생긴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나눠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하게 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은 잔인한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도 실행된 사례가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 최대 시리얼 제조업체였던 미국의 켈로그는 31년 기존의 8시간 3교대에서 6시간 4교대로 공장근무 체제를 바꿨다. 미시간주 배틀크리크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였다. “절망에 빠진 미국에 진보의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인들에게 위기 타개책을 보여줄 것입니다.” 켈로그 사장이 지역 매체에 한 말이다. 이렇게 켈로그 직원들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급여가 줄어드는 손해를 본 대신 300여명의 이웃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진 못했다고 벤저민 K 허니컷 아이오와대 교수는 저서 ‘8시간 VS 6시간’에서 보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정부의 조치로 노동시간이 8시간으로 늘어났고 이를 계기로 사측은 효율성 등을 명목으로 6시간과 8시간 노동제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6시간 노동제는 85년 완전히 폐지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지지 약화가 원인이었다.

국내에서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의 경영난 속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화두가 됐다. 대학에 다니던 나는 여러 시사지에서 해고가 아닌 일자리 나누기를 호소하는 글을 자주 읽었다. 어떤 글은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 안전망 없는 한국 사회에서 온 국민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사업장이었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도 98년 회사 측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등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체 인력의 20%가 넘는 1만여명의 해고를 결정했다(최종 277명 해고, 1968명 무급휴직 처리). 같은 해 많은 노동자가 비슷하게 해고당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노숙인으로 전락, 무료급식소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최근 저서 ‘가보지 않은 길’에서 현대차 노조의 정책 선회에 이 정리해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전 노조는 사회적 이익을 대표하는 조합주의 노선이었지만 이후 노조는 고용 불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 위주의 실리주의 노선으로 뒷걸음질했다는 것이다. 2000년 노사의 완전고용 합의로 정규직의 고용 보장과 함께 비정규직 채용이 허용됐다. 노조는 노동자 연대를 포기하고 회사는 이를 이용해 저임금 고용을 따낸 것이다. 고질적 ‘비정규직 문제’의 시작이었다.

만약 이때 현대차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실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대차는 일자리를 나눈 상징적 기업으로 두고두고 기억됐을 것이다. 어쩌면 ‘일자리 나누기’ 도미노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노동정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조선·철강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되는데도 ‘일자리 나누기’란 말을 듣기 어렵다. 노동정책 경쟁을 벌이는 대선 후보조차 일자리 나누기란 말을 하지 않는다. ‘공존’이라는 사회적 가치에서 멀어지는 단면 같아 안타깝다.

어릴 때 고향 농촌에서는 일꾼들이 모내기를 할 때 한솥밥을 먹었다. 밥을 먹다 인근 논에서 이웃이 오면 주저 없이 물었다. “밥 자싯능교? 같이 무입시더.”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이렇게 밥을 나눠먹는 것과 비슷하다. 십시일반의 정신이다. 이런 정신을 반영하는 주4일 근무제 또는 ‘9 To 4’(주 35시간 근무제)를 대선 후보 공약집에서 보고 싶다. 과욕일까. 아니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주4일 근무제나 주 35시간 근무를 실행하고 있다. 글=강주화 종교기획부 차장 rula@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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