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2월 19일] 유언 기사의 사진
찬송 :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492장(통 54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49장 28∼33절


말씀 : 아버지는 7남매 중 장남이시고 저는 3형제 중 장남입니다. 할아버지가 감리교 목사님이셨고 그 영향으로 아버지와 형제분들은 모두 감리교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포함해 아버지 형제분들 중에 네 분이 감리교 목사님이거나 다른 교단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감리교 목사입니다. 사촌들 중에 감리교 목사님 네 분이 더 있으니, 명실상부한 감리교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가운데 거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후손들은 믿음 안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면 다 다릅니다. 목회의 현장이 달라서일까요. 정치색도 다르고 목회 방법도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의 모습은 과거 삶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12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합니다. 그런데 유언의 내용은 자녀들의 삶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르우벤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아들로, 시므온과 레위는 폭력적인 아들들로 야곱은 기억합니다. 반면 유다는 왕의 권위로, 아셀은 왕의 수라를 차리는 자로, 갓은 추격하는 군대로, 단은 심판자로, 납달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자로 지파별 유언의 내용이 다릅니다. 야곱은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28절).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도,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다 축복이었습니다. 이 유언을 들은 자녀들은 아버지 야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내용이 자신들이 살아온 발자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발자취는 어떠합니까.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물질을 따르는 자녀가 있다면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언이 돼야 합니다.

본인은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 죽음 뒤에 장례식조차도 기독교식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의 죽음 앞에 장례절차를 통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신앙의 권면을, 도전을 받도록 자녀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무리 못된 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은 마음에 남는 법입니다. 유언으로라도 잘못된 삶의 모습을 지적하며 신앙생활을 당부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33절)고 했습니다.

삶의 여정을 마치는 날, 우리는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하나님나라에 갈 것을 믿습니다. 이 소망을 굳게 잡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주신 삶 가운데 승리하면서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의 계대를 잇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가르치고 명하는 부모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가야할 천국 소망을 굳게 잡고 삶 가운데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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