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권철] 정신보건법과 국가책임 기사의 사진
법은 사회의 공기를 바꾼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이미지를 바꿨다. 쇠사슬에 묶여 갇힌 미인가 요양시설로부터 의사의 치료가 가능한 정신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정신장애인을 환자로서 대우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갇힌 공간에서 갇힌 공간으로의 이동이었고,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만든 법이 아닌 치안 목적의 입법이었다. 그럼에도 이 법은 사회 안전이라는 본심을 숨기고 제1조에 환자의 의료와 사회 복귀를 법의 목적으로 써 놓았다.

법은 늘 그런 식이다. 인간의 존엄이나 권리를 보장하는 규정들은 그 현실이 정반대로 돌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규범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대체로 비참한데, 법마저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이면 현실은 곧 지옥이 된다. 흙수저의 현실을 법제도화하면 그것이 곧 노예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정신보건법은 당시 강제입원의 현실을 법제도화했다. 부랑자, 가족 돌봄이 없는 이, 치매노인, 지적장애인 등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정신보건법에 근거한 합법적 행위였다. 그리하여 2014년 말 기준 강제입원 환자 수는 5만6000여명에 이르렀다. 이는 1일 평균 교도소 수용 인원을 넘는다. 교도소보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달려오는 사설 환자이송단까지 있고, 입원 과정에서 연락수단마저 통제된다. 이러한 위험한 강제입원의 현실에서 사람들은 몇 가지 법·제도적 보장 장치들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됐다. 강제입원을 시킬 때는 국가에 알리고, 강제입원되기 전에 국가적 심사를 받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입원 절차가 위법한지를 국가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위와 같은 법·제도적 보장 장치가 정신보건법에는 사실상 전무하다면서 정신보건법의 가족에 의한 입원 조항을 위헌(헌법 불합치) 선언한다. 아울러 국제 기준에서 요구되는 절차적 보장 장치들(예컨대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입원 심사기구, 사법구제의 보장, 절차보조인, 사전 권리고지 등)을 법제도화할 것을 요구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와 정부가 위헌선언 이전인 지난해 5월 정신보건법을 전면 재개정해 강제입원의 국제 기준을 어느 정도 반영한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을 만들어놓아 강제입원 제도의 위헌으로 인한 혼란은 어느 정도 덜었다.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은 5월 30일 시행된다. 법 시행을 앞두고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와 인권단체는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도 정신장애인의 절차적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정신의료단체는 새로운 법은 정신의료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예산과 인력 준비도 안 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법은 당위와 현실 속에서 탄생해 현실을 규율한다. 헌재가 강제입원의 헌법적 기준까지 제시한 마당에 그 기준으로부터 정신건강복지법이 멀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제입원은 이제 가족이나 의사의 권한이 아닌 것이 되었다. 국가가 법을 통해 자신의 본래 권한으로 복귀시킨 것이다. 국가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책임은 그래서 더 막중해져야 한다. 권한은 책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신권철(서울시립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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