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북한계 남성이 北 지시 받아 전달하는 중간책” 기사의 사진
말레이시아 경찰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현장검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무장경찰 100여명을 동원해 극비리에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김정남이 피살된 항공권 발권기 앞과 안내데스크, 의무실 등에서 사건 당시 상황을 재연하도록 했다.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에 연루된 다국적 용의자 6명 중 여성 2명이 체포되면서 나머지 남성 4명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16일(현지시간) 용의자 6명은 범행 각본이 시행되기 전까지 모르는 사이였고 이들을 연결한 ‘중간책’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레이시아 보안 당국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남성 4명 중 40대 북한계라고 알려진 남성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다. 이 남성이 북한의 지시를 받는 중간책이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중간책 역의 남성은 쿠알라룸푸르에서 활동하는 ‘슬리퍼 에이전트’(Sleeper Agent·청부업체)를 주축으로 6인조 암살단을 조직했다. 북한 정찰총국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시사항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총국은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기구로 말레이시아 등지에 최대 조직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국적 타인들’로 암살단이 조직된 이유는 특정국에 의한 범행이라는 의심을 피할 목적으로 풀이된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암살을 시도할 때 국가 주도의 범죄를 벌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미뤄볼 때 북한이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마추어 여성들’과 현지 청부살인업체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북한 소행치고는 상당히 어설프다는 점이 수사에 가장 혼란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용의자들이 범행 장소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CCTV에 흔적을 남겨뒀고 여성 용의자 중 한 명이 범행 이틀 뒤 현장으로 되돌아온 점도 그렇다.

암살을 서두른 것이 맞는다면 김정남이 탈북단체를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 산케이신문은 김정은이 최근 정세 변화에 초조함을 느껴 일찍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나 중국과 마카오 등지를 떠도는 김정남에 과민반응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남은 용의자 4명을 붙잡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현지 매체 더스타에 따르면 보안 당국은 이들이 타국으로 도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육로, 해로, 항로 등 모든 입국 통로에 경비를 강화했다.

남성 용의자 4명이 쿠알라룸푸르를 이미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국내선과 국제선 승객 모두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기 전 엄격한 검색을 받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3개월 전부터 범행을 기획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탈출 전략을 짜놓았을 개연성이 높다. 더구나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중간에 위치해 이동이 수월하고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과도 지리적으로 인접해 이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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