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규의 문화공방] <92> 예술과 공감 기사의 사진
바닥에 내팽겨진 ‘더러운 잠’. 뉴시스
예술은 보편적 인격을 담보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직관이 예술로 승화될 때 그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대중은 그러한 예술을 스스로 사랑해 왔다. 세월을 버티며 늘 곁에 두었다. 사익과 욕망이 표출될 때 우리는 그것을 온전한 예술로 수용하지 않는다. 논란은 그것으로 시작된다.

지난달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 일부가 국회에서 시국 풍자 전시회 ‘곧, BYE! 展’을 열었다. 이들의 요청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전시공간을 대관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쟁은 곧 ‘표창원 더러운 잠 그림’으로 불똥이 옮겨 붙었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여기에 마네의 ‘올랭피아’와 짜깁기했다. 조악하기 그지없다는 평가와 현실을 풍자한 위트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혼재됐다.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은 결과적으로 국민적 공감을 연대하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남성의 입장에서 재현된 도를 넘어선 여성성 모독’이라는 견해가 훨씬 우세했던 것이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민주당은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표 의원에 대해 당직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앞서 2004년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공연된 연극 ‘환생경제’는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국회의원 이혜훈, 정두언, 나경원, 주성영 등이 출연했다. 현직 대통령 노무현의 극중 인물을 암시하는 ‘노가리’에게 욕설과 막말이 쏟아졌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환한 웃음을 터뜨렸으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연극은 연극일 뿐,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권력의 불찰은 늘 풍자의 대상이었다. 권력의 횡포를 조롱해 얻는 웃음은 대중이 누리는 카타르시스이며 동시에 강력한 저항이다. 풍자와 패러디가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조롱이라면 그것은 이미 공감을 상실한다. 우리에게 사랑받았던 풍자는 언제나 균형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보편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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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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