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흥우] 행정수도, 許할 때 됐다 기사의 사진
독점의 폐해는 심각하다. 세계 각국이 독점을 규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격언의 예외가 되지 못했다. 박근혜 시대의 종언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자유한국당도, 대통령 대리인단도 감을 잡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유한국당이 뜬금없이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질서 있는 퇴진’론을 다시 제기하거나 대통령 대리인단이 하염없이 시간끌기를 할 까닭이 없다. 이들 주장대로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없다면 법대로 하자거나 하루빨리 심판을 끝내라고 하는 게 상식에 맞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변화의 동인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정치를 바꾸든, 시대를 바꾸든 이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그중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적폐가 드러난 현행 헌법의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민 과반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고, 정치권의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박 대통령 개인의 철학 부재와 역량 부족에 기인한 것이지 87년 체제 탓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헌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것은 87년 체제의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통령제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로 갈리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약화시키는 분권형 개헌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권력 분산 못지않게 서울의 기능 분산도 중요하다. 서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중심지다. 정치권력은 물론 거의 모든 대기업 본사가 서울에 몰려 있다. 선진국치고 우리나라처럼 한 나라의 모든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 이래 형성된 강력한 중앙집권 문화의 영향이라지만 ‘서울공화국’이란 단어가 인터넷 국어사전에 버젓이 오를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집중도가 특히 심하다.

우리의 서울 중심 사상은 뿌리가 깊다.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국어대사전은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하고 있다. 모든 기준은 서울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기를 쓰고 ‘인(in) 서울’ 해야 한다.

서울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해괴한 관습헌법 논리에 막혀 좌절됐다. 그 결과 세종시는 이도 저도 아닌 천덕꾸러기 도시로 전락했다. 행정수도라는 본래 목적과 다른 도시가 됐으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과 세종으로 이원화돼 있는 행정기능 분산에 따른 비효율이다.

대통령 집무 공간인 청와대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사실상 대통령 혼자 근무하는 청와대 본관의 폐쇄된 구조를 대통령과 비서진이 함께 근무하는 백악관과 같은 개방 구조로 바꾸자는 지적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되면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구조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정부청사로 옮길 게 아니라 세종시에 새로 짓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유사기능은 한 곳에 모여 있어야 시너지가 발휘된다. 세종시에 있는 정부 부처를 서울로 다시 이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서울에 남아 있는 행정 기능을 세종시로 옮기는 게 맞는 수순이다. 분권형 개헌이 시대의 과제라면 개헌 때 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반드시 매듭지어야 한다. 잘못된 판단은 헌재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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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논설위원 겸 정치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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