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안희정 현상 읽기 기사의 사진
민주당 안희정 후보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의 지지율은 불과 한 달 만에 5%에서 20% 내외로 수직 상승했다. 제2의 노무현 드라마가 펼쳐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만일 그가 역전의 드라마를 쓴다면 본선은 오히려 싱거울 수도 있다.

안희정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필자는 그것을 ‘안철수 현상 시즌 2’라고 판단한다. 기실 2012년 안철수 현상은 낡은 이분법 정치에 대한 염증이 만들어낸 정치적 에너지였다. 당시 이 에너지를 안철수 후보는 살리지 못했다. 뒤늦게 국민의당을 만들어 반쪽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거듭된 ‘착지 오류’가 그를 위기로 내몰았다. 그의 착지는 좌일 수 없다. 기존 좌우의 기득권을 냉철히 비판하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포용력을 보이라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안보에서 보수라던 그가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사드 자체를 반대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촛불 정국에서 야권 내 선명성 경쟁에 몰두한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 경쟁에서 그가 이재명과 문재인을 제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호남에 몰입하면서 보수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모습은 합리적 보수층이 따라갈 매력을 잃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한 자릿수 지지율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의 정치적 에너지는 ‘극단의 정치’를 넘어 ‘중용의 정치’를 실현하라는 시대의 요구가 그 원천이다. 그런데 대부분 정치인은 이 중용의 정치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이해를 제대로 못한다. 중용을 일직선상에서 좌와 우의 중간쯤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천박한 이해다. 중용을 기회주의로 규정하는 것도 번지수가 틀렸다. 중용이란 한마디로 동태적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여 옳은 길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시시비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되 선입견(이념이든 감정이든)으로 재단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또한 중용의 정치는 시간의 정치(時中)다. 중용에 대해 명저를 쓴 황태연 교수는 시중(時中)을 ‘때맞춰 중화(中和)하다’로 해석한다. 중화란 근본적인 중심(大本)을 잃지 않으면서, 마땅히 이루어야 할 것을 해내는 것(達道)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미래를 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려면 적확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하고, 이를 실현할 인재를 두루 구해 탕평을 해야 한다.

극단의 정치에 빠진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 ‘정체성’이라는 단어다. 정체성을 닫힌 것으로 이해하는 순간 대결의 정치를 피할 도리가 없다. 정체성은 끊임없는 상호작용, 특히 소통과 공감 작용을 통해 갱신될 수 있는 열린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적대와 투쟁’이 아니라 ‘타협과 합의’가 정치의 본령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협치, 분권, 연합 정부 등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 자체가 중용의 정치가 시대정신임을 알려주는 일이다.

안희정 현상을 안철수 시즌 2로 보는 이유는 중용의 정치에 대한 희망이 안희정 지지율 상승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희정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크게 세 부류가 주도하고 있다.

야권 내에서 친문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중도진보층, 기존 보수 후보들이 미덥지 않은 합리적 보수층, 안 후보의 공감 중시 태도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중도층 등이다. 사실 ‘제3지대’가 제대로 형성되었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 후 제3지대가 지지부진하고, 국민의당이 호남야당 이미지에 갇히게 되면서 마음 줄 곳 없는 중도와 보수층이 그에게로 쏠리고 있다.

결국 안철수 현상 시즌 2로서 안희정 현상의 성공 여부는 안 후보가 어떤 실천을 보이는가에 달려 있다. 중도와 보수의 비어 있는 공간을 공략한 전략적 착지에는 성공했지만, 이것이 정치적 전략을 넘어 진정한 가치에 입각한 행동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외교 안보 위기, 경제 위기, 삶의 질 위기, 인구 위기 등 다중 복합적 위기에 둘러싸인 현 상황을 극복할 비전과 전략은 무엇인지, ‘연합의 정치’를 구두선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얻기 위한 대안으로 본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등 그가 대답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앞으로 그는 ‘극단의 정치’로부터 빠져나와 ‘중용의 정치’를 할 의지와 능력이 확실히 있는지를 검증받을 것이다. 이 길에서 좌고우면하거나 탈선한다면 그가 연출한 ‘시즌 2’도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만일 이 선로를 제대로 지켜낸다면 노무현 드라마가 재현될 수도 있다. 지켜볼 일이다.


▶‘월급 흉년’ ‘세수 풍년’…‘13월 폭탄’ 연말정산 올해도 부글부글
▶'세월호, 잘죽었다' 어제 대구스타디움 지하도 상황
▶김평우 전 변협회장 “왜 변론 막냐” 헌재서 고성
▶“김정남, 2011년 부친 장례식 참석 위해 평양에 갔다 신변 위협 공포 느껴 황급히 빠져나와”
▶"갑자기 달려들어, 2.3초만에"… 김정남 암살 CCTV 영상 공개
▶진격의 안희정 중도·보수층 지지 흡수… 문재인 8.6%P 차 추격
▶"2년째 폐암 투병 중이었다" 국민배우 김지영 향년 79세로 별세
▶김민희 30초짜리 베를린 인터뷰가 또다른 논란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