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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류길재] 한 경계인의 죽음이 떠오르게 하는 것들

“김정남 암살 관련해 신중하고 적확한 행동 취해야 북한 압박 공조전선 구축될 것”

[시사풍향계-류길재] 한 경계인의 죽음이 떠오르게 하는 것들 기사의 사진
김정남. 1971년생.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니 소위 ‘백두혈통’이고 김씨 왕조의 황태자이다. 그러나 만 46세로 비명횡사하고 만 비운의 황태자가 되고 말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김정일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기뻐했고, 그를 업어 재웠고, 그가 울면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달랬다는 것이 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증언이다.

그러나 김정남이 세 살 되던 해부터 그의 생모 성혜림이 불면증, 신경쇠약, 불안발작을 앓게 되면서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것도 외부와 격리된 채. 나중에 모스크바와 제네바에서 공부하게 되었지만,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누리진 못했다. 그리고 김정일이 세 번째 여자인 고용희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그 소생인 김정철, 정은, 여정이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그를 보호할 수 있는 후견인도 사라졌다.

김정남이 김정은 정권에 의해 피살됐다는 것은 정황상 사실로 보인다. 범행 수법은 엉성해 보이지만 핵심은 북한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로 보이지 않도록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였을까. 김정은이 김정남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적인 경쟁자로 생각해서 제거했다는 사전제거설, 북한 내부 권력기관들 간의 충성경쟁이 빚은 내부갈등설, 김정남이 한국 또는 3국으로의 망명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를 막기 위한 망명방지설 등 다양한 이유가 제시된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건 김정남은 제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형제의 난에 희생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공민이었지만, 일반적인 공민은 아니었다. 북한 공민이라면 피할 수 없는 억압적이고 궁핍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당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북한 체제에 대해, 권력에 대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그런 존재조차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제거해야만 하는 김정은의 행태는 왕조국가 북한에서는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제사회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정부의 대처는 정확하고 기민했다. 15일에 이어 20일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번 사건이 북한 소행임이 확실하고, 반인륜적 테러행위이며,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말레이시아 당국과의 협력을 위한 외교부 등 정부기관의 행동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도 신속성과 강성을 주조로만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해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북한을 규탄하고, 강력하게 성토하는 데 앞장선다. 핵실험이건 미사일 도발이건, 정치적 숙청이건 북·중 갈등이건 북한의 부정적인 또는 도발적인 행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늘 그렇다. 분단 세월 동안 북한의 도발적, 반인륜적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그런 현상이 더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신속성과 강성도 필요하지만, 절제와 유연성도 필요하다. 전략적 고민이 담긴 행보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 문제와 남북 관계가 국내 정치에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더 강하고, 부드러운가를 놓고 자중지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 또한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낼 수 있다. 한국의 신중하면서도 적확한 태도와 행동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고 북한을 압박하는 공조전선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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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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