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손봉호] 도덕적 권위의 시민사회를 꿈꾸다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시민사회’란 용어는 주전 1세기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글에도 나타나고,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시민사회를 역사 발전의 한 단계로 유무상통의 가족중심 공동생활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단계의 공동체 형태라 했다. 그가 기대한 이상적인 국가는 출현하지 않았지만, 시민사회를 가족이나 국가와는 구별되는 공동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이해와 일치한다. 현대 시민사회는 게르너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를 제외한 사회의 모든 다른 부분’으로 이해되고, 특히 그것이 공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를 뜻한다. 지금의 한국처럼 수많은 시민운동단체(NGO)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공적인 기능을 활발하게 수행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국가는 법률에 근거해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법과 권력은 선거란 절차를 거쳐 이뤄진 것이므로 강제적 집행이 정당성을 갖고, 공적 임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공적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권한이 없고, 공익을 위해 시간, 돈, 노력을 제공하지만 공적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시민단체의 권위와 영향력은 시민들 다수의 호응과 신임이다. 시민운동을 위해 필요한 재원도 원칙적으로는 동조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회비나 기부에 의해 마련돼야 한다. 건전한 시민단체가 많은 사회는 성숙하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부, 정치인, 기업 등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과 단체들의 권한 남용이다. 특히 국가기관과 정치인들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부패한다. 삼권분립이 이뤄졌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비리에 휘말리게 된 것을 보면 권력 집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정부와 기업은 과거에 비해 조직과 운영이 복잡해져 시민 개개인이 그들의 권한 오남용을 쉽게 알 수 없고 그것을 견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체를 만들어 시민의 지지를 배경으로 감시와 견제 활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데 필수적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국가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형식적 위임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공익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힘은 시민들의 지지와 신임으로부터 나온다. 시민들의 지지와 신임이 없으면 스스로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활동을 한다고 주장해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고 단체의 유지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우선 국가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발견하고 감시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는 것을 개발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충분한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다. 철저히 투명하며 공정하고 순수해야 한다. 부정을 감시하고 권한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권한보다 더 강한 자체의 도덕적 권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때 한국 시민단체들은 공명선거, 환경보호,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 등 여러 가지 중요한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최근에 많이 무력해졌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순수성과 공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부패할 경향을 가지고 있고,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Lord Acton)의 경고는 시민단체에도 적용되고 실증됐다. 공익을 위해 많은 업적을 이룩해 영향력이 커지자 그 성공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공익을 위한 활동보다는 자체의 존립과 위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가 상당수가 정계로 진출해 ‘시민운동은 정치계 입문을 위한 디딤돌’이란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 편향돼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함으로 보편적인 신임을 잃고 말았다. 시민운동이 이렇게 약해진 것은 실로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복음주의 기독교 NGO들은 큰 도덕적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나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뚜렷한 정체성을 과시하는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면 좋겠다.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손봉호 '월드뷰' 대표주간·고신대 석좌교수, 그래픽=전진이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