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창호] 엘리베이터에서의 단상 기사의 사진
종종걸음, 무표정. 출근시간 오피스빌딩에서 만나는 직장인들의 얼굴은 하나같다. 너무 바쁘다. 그리고 한국에는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습관이 아예 없다. 빌딩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번잡한 곳이 기다린다. 여기서부턴 전쟁이다. 아무도 줄서지 않는다. 먼저 온 이가 뒤로 밀리고 밀어붙이는 이가 먼저 올라탄다. 조금만 늦게 움직여도 문은 인정사정없이 닫힌다. 사람들은 재빠르게 ‘닫힘’을 누른다. 밖에서 들리는 “잠깐만요”라는 소리는 단호하게 무시당한다.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도시인에게 엘리베이터는 일상이다. 직장으로 가기 위해, 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여러 회사와 부서가 같이 쓰는 빌딩,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고층 아파트가 삶의 터전이라서다.

몇 달 전 겪었던 일이다. 토요일 오후였다. 산책이라도 갈 요량으로 나왔다가 두고 온 휴대폰을 가져오려고 다시 집안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현관엔 아무도 없었고, 무심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대여섯살 사내아이가 “아저씨, 같이 가요”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열림’을 누르지 않았다. 귀찮아서. 그냥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21층짜리 아파트의 18층인 집에 들어갔다가 잽싸게 휴대폰을 집어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물론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내려갈까 싶어 21층을 미리 눌러놨던 터였다. 여유 있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아까 그 사내아이가 엘리베이터 옆에 앉아 울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다 젖어 있었다. 아이는 내게 “아저씨 때문에 바지에 오줌 쌌잖아요”라고 소리 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척 현관을 벗어났다. 차를 향해 20여m를 걸으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 이외엔 안중에도 없는 철면피! 다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우리 회사 건물의 엘리베이터 문은 닫힘을 누르지 않아도 5초가 지나면 닫힌다. 유심히 관찰해보면 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 열의 아홉은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른다. 남들에게 단 5초의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매몰찬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무례함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타는데 뒤로 가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 옆에 서서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 뒤편의 사람이 내리려 해도 잘 비켜주지 않은 채 휴대폰 게임을 하는 이,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하거나 동료와 떠드는 사람…. ‘나만 편하면 다’라는 식이다.

‘현대적으로, 더 현대적으로’를 외쳤던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이 현대는 참 맹목적이고 일방향성이다. 오직 첨단만을 지향한다. 첨단일수록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만 집중한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는 ‘좀 더 나만 생각하기’를 강요한다. 빠르게 스쳐가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고,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모른 척하기가 아주 쉽다. 외면해도 다시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절대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지 말자’고 결심한 지가 한참 됐다. 조그만 사내아이가 오줌을 싸도록 내버려뒀던 때부터다. 그렇게 결심하고도 가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란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손가락이 닫힘을 향해 가곤 하기 때문이다.

보통 야만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문명은 약자도 강자와 같이 대접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첨단 문명의 한가운데서 야만을 겪는다. 아무도 배려하지 않고, 배려받지 못하는 엘리베이터 같은 곳 말이다.

진짜 문명에는 아주 중요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하나 있다. 절대자 앞에선 모두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신으로부터 똑같은 권리를 받은 타인을 자기만큼 배려해주는 일이다.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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