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깡패국가와 대화하는 법 기사의 사진
‘깡패국가(또는 불량국가·rogue state)’의 유래를 굳이 따진다면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일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냉전이 이어지던 1985년 한 연설에서 “우리는 무법국가(또는 범법국가·outlaw state)들로부터 공격을 참지 않겠다”고 했다.

깡패국가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빌 클린턴 행정부가 처음 사용했다. 1994년 당시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자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테러를 지원하며,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는’ 나라를 열거하면서 이들을 깡패국가라고 칭했다. 북한과 쿠바, 이라크, 이란, 리비아 5개국이었다. 물론 미국이 이 국가들을을 깡패국가로 규정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적성국이라는 정치적 이유가 가장 컸다.

북한은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다. 이 역시 9·11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의 선봉에 섰던 부시 행정부의 대외전략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었다.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깡패국가, 악의 축으로 불리던 나라들의 상황은 변했다. 쿠바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이라크와 리비아의 독재정권은 교체됐으며, 이란 역시 오랜 제재 끝에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했다. 북한만 마지막까지 예외로 남은 셈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 역시 국제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1차 북핵 위기가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을 때,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도출했을 때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2012년 2·29합의 등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두 파기됐지만 말이다.

이런 국제사회와의 약속에도 북한의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핵무력 강성대국을 공언한 대로 북한은 국제사회 압박에도 핵·미사일 위협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잠깐의 휴지기는 있었을지 몰라도 이들의 근본적 전략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근과 채찍의 투트랙 전략, 전략적 인내 등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해법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한동안 사용되지 않던 깡패국가라는 표현이 김정남 암살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을 “국제법을 아예 지키지 않는 깡패국가(rogue nation)”라고 비난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형을 신경성 독극물 VX로 암살까지 했으니 이런 막장드라마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다. 애써 외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막을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다. 물론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협상,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북한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기 위해선 강력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현재로선 방법이 없는 듯하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일부 대선 주자들이 주장하는 ‘북한과의 대화’는 그래서 공허한 측면이 크다. 기계적인 당위론 때문인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반작용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에 시간만 벌어주는 어설픈 대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의 대북 접근법은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달콤한 회유와 당근만으로 깡패국가를 다루면 안 된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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