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촛불과 태극기를 들기 전에

[시온의 소리] 촛불과 태극기를 들기 전에 기사의 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앞에 모였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태극기를 들고 대한문 앞에 모였다. 이들 모두 우리 국민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믿는다.

왜 촛불을 드는가. 대통령이 한 것으로 언론에 알려진 여러 잘못된 일들로 인해 마땅히 탄핵돼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탄핵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왜 태극기를 흔드는가. 대통령이 잘못은 했지만 물러나야할 만큼 위중한 잘못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가 불의에 맞서는 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해 태극기를 흔들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어떤가. 성도 간에도 주장이 양립한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의견은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하므로 이러한 현상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다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세상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행동도 해야 한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의(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주님이 의로운 분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설파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는 공의(公義)를 뜻한다.

공의는 하나님의 의를 지칭한다. 이와 구분될 수 있는 의로서 정의(正義)가 있다. 정의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공의가 세상에서 구현되면 될수록 더욱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의롭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의와 정의가 불일치하는 일이 생기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실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이 정의일까,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는 게 불의에 대한 승리일까. 과연 누가 진정한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일까. 필자는 광장에서 서로 마주보며 외치고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라고.

그러면 하나님의 편은 어디인가. 촛불인가 태극기인가. 성도들이 지금 진정으로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서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수백만 주민들이 굶어 죽도록 방치한 북한 정권을 향해 2500만 동포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쳐오고 있는 곳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안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그 일을 열심히 했다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이런 일은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자. 북한 땅에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 먼저이고 더 시급하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간 부녀자들이 인신매매당하고 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능욕을 당하고 학대를 받고 있다. 의로운 북한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큰 불의를 애써 외면하고 작은 불의에 대항하는 게 진정 정의로운 일인가. 촛불을 들기 전에, 태극기를 흔들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촛불과 태극기는 둘이 아니다. 하나다. 성도에게 광화문과 대한문은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 놓으신 공의로운 문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북한 땅에도 그 문이 한시라도 빨리 열리도록 간구하는 성도가 많이 일어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김덕규 교수 (부산 동아대 의대)

약력=△동아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부산 온천교회 장로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시 발표 △2013년 ‘문학시대’ 등단시인 △‘살아만 있어다오’(2013) ‘봉화’(2015) 시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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