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탄핵심판 이후가 걱정되는 진짜 이유 기사의 사진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 후를 걱정한다.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 민심’이, 인용되면 ‘태극기 측’이 들고일어난다는 것이다. 1945년 광복 직후 좌우익이 극심하게 대립했던 때처럼 국론이 양쪽으로 쫙 갈라질 수 있다고 염려하기도한다. 과연 그럴까. 헌재 결정이 내려지면 대한민국은 양편으로 나뉘고 나라는 결딴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시적 혼란은 있겠지만 치명적 후폭풍은 없을 것으로 여긴다. 양비론에 익숙한 도식적 접근이 ‘과잉공포’를 낳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여러 정황상 탄핵심판은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 75% 정도가 탄핵을 지지하는 일관된 여론조사 결과, 사실로 굳어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관여 의혹, 법리적 다툼을 포기한 듯한 대통령 대리인단의 재판 지연과 어깃장 대거리 등에서 그런 기류를 읽는다. 재판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강도 높게 돌출되는 대리인단 주포 김평우 변호사의 불복 주장은 인용의 자기고백처럼 들린다.

결국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응 정도가 불복 여진의 강도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예상보다 돌풍이 세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몇 가지다. 우선 태극기 세력의 공격 대상이 선연하지 않다. 탄핵심판 결정 이전까지는 분명했다. 특검과 헌재, 일부 언론사였다. 헌재 선고가 끝나면 특검은 이미 없다. 헌재도 탄핵과는 무관한 상태다.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검찰에 목소리를 높여봐야 큰 의미가 없다. 특검과 헌재를 대하는 것처럼 분노의 동력은 생기지 않는다. 맞설 상대가 흐릿하면 노기가 수그러들고 싸움은 시들해진다.

태극기 집회를 지탱했던 한 요인인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과 가짜뉴스의 선도는 갈수록 약해진다. 시간은 진실과 허위를 구분케 한다. 사실과 주장, 진짜와 가짜의 정체는 변설(辨說)의 힘에 검증된다. 며칠 전 고향의 팔순 노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니 한국은 각오하라”는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퍼 나른 메시지를 받아 어렵게 아들에게 다시 보낸 노모의 나라걱정에 마음이 아프다. 그릇된 말로 이 땅의 많은 어르신들을 근심케 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질서의 효능에 대한 상당수 국민의 바람을 공권력이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란 희망도 있다. 혐오와 배제를 넘어 증오범죄의 섬뜩함마저 드러내는 일부 친박의 무모함은 결국 다스려진다. 권력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것이 권력이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관심이 대통령 선거로 쏠리면 그들은 표변한다. 당선 유력 후보의 심기를 살필 것이다. 예컨대 정권 말이면 확인되는 검찰의 하이에나 속성이 이번이라고 예외일 리 있겠나. 이미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마당에 저어할 까닭이 없다.

걱정만큼 요동치지 않을 것이란 낙관적인 예측은 지난 27일 박 대통령의 최후 진술의견서를 읽는 순간 접어야 했다.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그의 태도는 더 강고해졌다. 국민들, 특히 지지자들에게 냉정과 자제를 호소하는 눈물은 없었다.

다수가 탄핵 결정 후를 고민한다. 대선 후보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나 100% 동의하지 않는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묶은 사람이 푸는 것이 즉효다. 박 대통령이 태극기 시위 참가자들의 심정을 다독이는 결단만이 그나마 역사의 평가에서나마 낙제를 면하는 길이다. 기대를 저버린다면, 2017년의 대한민국은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논리를 바탕으로 이견이 맞서는 국론 분열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소란’에 시달린다는 게 더 씁쓸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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