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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벨 “한국, 세속적 아닌 영적 독립 이뤄야”

외증손자 인요한 소장 3·1운동 관련 선교편지 첫 공개

유진 벨 “한국, 세속적 아닌 영적 독립 이뤄야” 기사의 사진
인요한 세브란스국제진료센터 소장이 28일 공개한 유진 벨 선교사(작은 사진)의 1920년 10월 선교보고서.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부 실행위원들에게 보낸 이 보고에는 3·1운동 후 일제에 의해 핍박받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실상이 담겼다. 인요한 소장 제공
유진 벨 선교사가 3·1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 10월 21일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부 실행위원들 앞으로 보낸 선교편지가 최초로 공개됐다. 벨 선교사는 1895년 4월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와 목포 정명학교, 광주기독병원을 세우는 등 호남 복음화에 힘썼다.

‘한국의 독립운동-원인과 결과’(The Independence Movement in Korea)라는 제목의 선교편지에는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참상과 3·1운동에 담긴 기독교적 의미, 선교의 결실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벨 선교사의 외증손자인 인요한 세브란스국제진료센터 소장은 28일 “우리 집안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온 자료”라며 이 문서를 공개했다. 인 소장은 “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독립 후 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로 양성하길 원하셨는데 그런 열망이 잘 담겨 있다”고 말했다.

벨 선교사는 선교보고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에 의해 지속적인 모욕과 압제, 군사적 부당함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19년 봄에 있었던 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한 집회(3·1운동)는 식민지 국가의 국민들이 스스로 독립을 결정하고 선언하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독립운동”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는 “불쌍한 한국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견뎌야 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난을 당했던 것처럼 수천여명이 재판도 없이 감옥에 외롭게 방치돼 있고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기술했다.

고난이 신앙의 열매로 자라고 있다는 고백도 담았다. 그는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으며 고난 속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고 있다”면서 “의대를 졸업한 한국인 학생들은 차별 없이 진료하는 희망을 품고 있으며 장로교신학교에서도 더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졸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벨 선교사는 또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며 한국도 회복될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면서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독립이 아니라 영적이고 신앙적인 독립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집트로 팔려갔던 요셉의 이야기를 들어 “이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핍박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본의 압제자들에게 결국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신을 피력했다.

변창욱 장신대(선교학) 교수는 “벨 선교사가 꿈꿨던 독립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라며 “교육과 훈련, 선교를 통한 ‘장기적 항일’의 비전을 담은 선교보고”라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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