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성] 기억력 3초에 멍청?… 물고기는 억울하다 기사의 사진
물고기는 감정도, 이성도 없는 미개한 존재일까. 신간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인간들의 이런 생각을 ‘지독한 편견’으로 규정한다. 사진은 물고기 도리가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의 한 장면.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는다면 이 작품의 스토리가 허무맹랑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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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물고기한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시라. 많은 독자들은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라는 말을 떠벌리며 물고기를 무시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포유류나 조류에 견줬을 때 어류는 원시적인 동물이라고 여겼을 테고, 저들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있다 말한다면 콧방귀부터 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는다면 이들이 얼마나 영특하고 총명한지 실감하게 된다. 부제 ‘물 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이라는 문구처럼 물고기와 인간이 사촌지간처럼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촌보다는 집안의 어르신이라고 여겨도 될 듯하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온 시간이 1초라면, 물고기는 4분 넘게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있으니까.

물고기가 똑똑하다는 증거는 하늘에 뜬 별만큼 많다. 대서양 연안에 사는 못생긴 물고기 ‘프릴핀고비’를 예로 들어보자. 이 물고기는 썰물과 밀물 사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간대(潮間帶)에 서식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로 따지면 썰물이면 갯벌에 등장하는 망둥이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다.

프릴핀고비의 생존 전략은 독특하다. 썰물 때면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 둥지를 트는데 문어나 왜가리에 잡아먹힐 것 같으면 옆 웅덩이로 ‘점프’한다. 기가 막힌 건 수많은 웅덩이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오가는 신출귀몰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 프릴핀고비가 이럴 수 있는 건 밀물 때 헤엄을 치면서 조간대 지형을 모조리 머릿속에 입력해놓았기에 가능하다. 컴퓨터에 견줄 만한 두뇌를 갖춘 셈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물고기도 있다. 물고기가 인간처럼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이들 모습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도 확인 가능하다. 한 번 물었던 낚싯바늘에 또 걸리는 것은 모자란 지능 탓이 아니다. 단지 식욕이 ‘통증의 트라우마’를 넘어서기 때문에 아픔을 참고 미끼를 무는 것이다.

2011년 9월 기준 인간 세계에 등재된 물고기는 3만2100종에 달한다. 현재까지 인간이 탐사한 바다가 전체의 5%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물고기는 더 많을 것이 불문가지다. 인간이 발견한 물고기 3만2100종 가운데 제대로 연구된 물고기도 수백 종에 불과하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 테네시대에서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저자는 물고기의 관점에서 각양각색 스토리를 풀어낸다. 물고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인식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들려준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물고기 스토리’를 좇다보면 어느 순간 물고기에 가졌던 편견이 하나둘 깨지기 시작한다. 물고기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저들의 도덕적 권리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물고기의 고통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건 ‘감정을 이입할 실마리’를 찾는 게 어려워서다. 눈물을 흘리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으니까. 무엇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항상 휘둥그레 눈을 뜨고 있으니까. 하지만 물고기는 물 속에 살아 눈꺼풀이 필요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물고기는 아플 때 소리를 지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물 속을 통과하도록 진화됐기에 사람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인간과 물고기는 ‘노는 물’이 다를 뿐 이성과 감성을 지닌 이 세상의 생명체들이다. 물고기 예찬론이 담긴 이 책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제대로만 알면, 인간은 세상에서 훌륭한 공동선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지난해 해외에서 출간됐을 때 아마존닷컴 포브스 선데이타임스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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