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김동리 아들, 김규동 아들 기사의 사진
시인 김규동(1925∼2011)은 ‘플라워다방’에서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동리는 수인사 끝나자/ (월북 소설가) 이태준의 안부를 묻고/ 북에서 ‘농토’(이태준 장편소설)를 발표했는데/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다/ 서울 물정에 어두운/ 초면의 문학청년에게/ 김동리는 비교적 친절했다/ 그의 경상도 말씨는/ 여기가 과연 남조선이구나 싶은/ 감명을 안겨 줬다.”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김규동은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1948년 정월 교복을 입은 채 혈혈단신 월남했다. 그해 여름 김동리 조지훈 등이 진을 치고 있던 서울 소공동의 한 다방에 들렀다. 남쪽 문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다방은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넘어서 문인들이 일상에서 무뎌진 감각을 정화하고 영감을 구할 수 있게 했던 장소였다. 두 문인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 플라워다방이다.

김동리와 김규동은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경북 경주 출생인 김동리는 ‘무녀도’ ‘등신불’ 등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작품을 남겼다. 반공주의 성향을 가진 순수주의라는 말로 요약된다. 반면 김규동은 초기 모더니즘 성향을 보이다 이후 민족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내며 재야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의 인연이 아들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동리의 차남은 탄핵심판 대통령 대리인 김평우(72)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고 김규동의 둘째 아들은 김현(61) 현 대한변협회장이다. 김 변호사와 김 회장은 서울대 법학과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7일 이사회를 열어 김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논의한다. 탄핵심판 변론과 각종 집회에서 쏟아낸 김 변호사의 막말이 변호사법을 위반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볼지, 아니면 변론권 행사 범위로 볼지 징계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글=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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