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혼자라서… 눈치 보다… 입 닫는 청년들 기사의 사진
서울 관악구에서 혼자 자취 중인 대학생 성모(24)씨는 겨울방학을 침묵 속에 보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건 예삿일이 돼버렸다. 자취방에서 혼잣말을 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냉장고를 열며 “오늘 뭐 먹지”, 공부를 하면서 “이 문제 어렵네” 하는 식이다. 약속이 없는 날은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가끔 통화할 때만 말을 한다. 성씨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대화를 하려고 일부러 친구를 만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2030세대가 자의 반 타의 반 침묵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벼룩시장 구인구직이 직장인 517명을 대상으로 가족 간 대화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하루 30분도 대화하지 않는 이들이 55.2%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들은 크게 혼자 살고 공부만 하다보니 말을 안 하게 된 타의적 침묵파와 일부러 입을 열지 않는 자의적 침묵파로 나뉜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한모(24·여)씨는 대표적인 타의적 침묵파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다보니 입을 열 일이 없다.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고 카페 점원에게 주문한 말 한마디가 오전에 나눈 대화의 전부일 때도 있다. 한씨는 “음료 대기 줄이 길어 앱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날엔 그마저도 안 하게 된다”고 했다.

청년층이 입을 열지 않게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나 혼자 문화’ 확산과 소통 방식의 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밥(혼자 밥먹기)이나 혼술처럼 혼자 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가 개인화되고 있다”며 “괜히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다가 갈등을 빚거나 하면 피곤해진다는 생각에 이를 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젊은 세대가) 인터넷, SNS 등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실제 만나 소통하는 것은 낯설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진단했다.

직장생활의 고단함이 침묵을 부르기도 한다. 중소기업 5년차 직장인 윤모(30·여)씨는 주말엔 집에서 조용히 보낼 때가 많다. 윤씨는 “사무실에서는 업무상 거래처와 통화할 일이나 상사, 후배와 조율해가며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말을 많이 하게 된다”며 주말엔 텔레비전을 보며 쉬다보니 말할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이모(31)씨도 자발적 침묵을 택했다. 이씨는 친구들 사이에선 수다쟁이지만 출근하면 과묵한 신입사원이 된다. 직장 상사나 동료가 사적인 것까지 캐물을까봐 귀찮기도 하고, 말 많은 사람이란 이미지를 남기기도 싫어서다. 이씨는 “어떨 땐 입으로 떠드는 오프라인 대화보다 손가락만 놀리면 되는 SNS 대화가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경우는 수직적인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신 교수는 “젊은이들이 직장 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침묵하는 일이 있다”며 일종의 방어적 침묵으로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공동체가 모래알처럼 점점 더 개체화·파편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청년층에 소통욕구 자체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온라인에서는 소소한 일상까지 공개한다. 신 교수는 “촛불집회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소통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라며 “기성세대에 편중된 발언권을 젊은층에도 나눠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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