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4차 산업혁명은 ‘덫’이다? 기사의 사진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 한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중략)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124쪽) 더 열심히 일했으나 더 불행해진 삶을 맞이한 인류는 그때부터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등 온갖 병치레를 겪기 시작했다. 특히 밀을 재배하기 위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온종일 잡초를 뽑는 등 등골이 휠 정도로 노동을 강행하면서 없었던 병도 생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고 주장한다. 밀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인류는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식량을 확보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실한 식사와 돌이킬 수 없는 질병, 그리고 불행한 삶뿐이었다.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인류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 농업혁명은 이제 ‘사기’를 넘어 빠져나갈 수 없는 ‘덫’으로 변신했다. 수렵생활을 그만두고 재배하기 시작한 밀이란 작물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얻은 삶의 편리함은 오히려 인간을 편리함의 덫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장본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은 없어도 되는 사치품이었다. 사치품에 길들여지면서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되는 순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사치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사치품의 덫에 걸린 불행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좀 더 편리하고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 만든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전환되면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고 불편함이 해소되었다. 문제는 인간이 이전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삶을 더 여유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예상한 사치품이 실제로 인간의 삶을 더 느긋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예처럼 노동하게 만드는 비극이 된 셈이다. 근대올림픽 슬로건인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외치며 달려왔지만 무엇을 위해 왜 달리고 있는지 모르는 슬픈 인간의 잔상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던져준 메시지처럼 산업혁명으로 얻은 기계적 속도와 효율이 남긴 피폐한 인간상이 떠오른다.

지금 전 세계는 새로운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다름 아닌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언급하면서 대중화된 개념이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으로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효율혁명이었으며, 19세기 2차 산업혁명은 전기를 통한 대량생산 혁명이었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주도하는 자동화 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융합돼 새로운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반의 초연결혁명이다. 무엇보다도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돼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과 기계가 거꾸로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 가시화되고 있다. 단순반복 작업이나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까지 많은 일자리를 기계가 대신 수행하게 된다.

농업이 인류 복지에 기여한 것은 별로 없고 오히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더욱 피폐하고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덫에 걸렸다는 주장은 4차 산업혁명에도 그대로 적용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더 많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기술 간 연결과 융합이 오히려 인간적 삶을 거꾸로 길들이는 혁명의 덫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농업혁명으로 생긴 효율과 더 많은 식량이 인간적 풍요로움과 행복을 가져오지 못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이끌어가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초연결성과 다양한 기술적 융합도 인간적 행복을 위한 혁명인지 아니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기술적 덫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급격한 기술발전과 문명의 발달이 이를 일으킨 인간의 행복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장본인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부화뇌동해야 되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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