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마담 홍의 퇴장 기사의 사진
모마(MoMA)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뉴욕현대미술관은 재벌 부인들이 수집한 미술품에서 탄생했다. 1929년 석유왕 록펠러의 며느리 애비 록펠러는 친구인 릴리 블리스, 메리 퀸 설리번과 함께 각자의 소장품으로 미술관을 열었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때라 이들의 거사를 놓고 ‘대담한 여성들’ ‘철없는 사모님들’이란 평가가 나왔다.

부유한 독일 기업인의 딸인 헬레네 뮐러는 네덜란드 남편인 크뢸러의 지원 아래 반 고흐의 초기 작품들을 사들였다. 그가 10여년에 걸쳐 모은 소장품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면서 설립된 곳이 네덜란드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운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딸인 페기 구겐하임은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 유럽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연인으로 현대미술의 중심 무대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재벌 사모님들의 미술품 사랑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1991년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아들 이름을 따서 선재미술관을 세웠다. 미술사를 전공한 최종현 전 SK 회장의 부인이자 워커힐 미술관장이었던 박계희씨는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전을 열기도 했다.

미술관이 재벌 부인이나 딸들 차지가 된 것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경영 참여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거다. 미술품은 비자금이나 편법 상속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부인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씨가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서 물러난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3학년 때 국전에서 입선한 홍씨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게 전시회 안내를 한 것이 계기가 돼 이 회장과 결혼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미술계에도 ‘마담 홍’이 뜨면 서로 모시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을 탓해야 할까. 유능한 컬렉터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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