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근모] 원전 누적안전운전 500년의 기록 기사의 사진
1978년 원전 상업운전이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는 지난 2월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원전 누적운전(Reactor-year) 500년’을 달성했다. 누적운전 연수는 원전별 최초 계통병입 후 현재까지 안전 가동기간을 전부 합친 수치다.

원자력발전은 그간 묵묵히 우리 경제와 환경을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가동 중인 25호기 원전이 약 40년간 누적운전 500년을 달성하는 동안 생산된 에너지는 서울시민이 무려 71년간 이용할 수 있는 3조3000㎾h에 달한다. 같은 양의 전력을 화력발전으로 생산했을 경우에 비해 비용으로는 303조4000억원을 절약하고, 22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었다. 축적된 원전 운영 경험은 관련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일궜다. 부단하고 꾸준한 한 기술 자립을 바탕으로 토종기술로 차세대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개발하는 성과를 이뤘고, 지난해에는 국내 25번째 원전이자 APR1400 최초 원전인 신고리 3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함에 따라 세계 최초로 3세대 원전 시대를 열었다.

2009년에 186억 달러(약 21조3000억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해 세계 발전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인 UAE 원전 건설을 완벽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6억 달러 규모의 운영지원 계약을 체결, 국내 원전 운영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지식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특히 UAE 수출 원전인 한국형 원자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성 평가와 설계인증 심사를 받고 있으며 내년 중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원자력발전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대지진 후 지진해일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일시에 불안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 사고가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노후설비 교체 및 내진성능 보강 등 조치가 취해졌다. ‘안전 최우선’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지속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여전하다. 정부가 장기적 전력수요를 고려해 결정한 신고리 5, 6호기 건설마저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대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제기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허가 무효’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있었다. 법원 판결의 취지는 수명연장 허가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나 이번 판결로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에 대한 논란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는 원전에 대한 안전성과 수용성을 나눠 접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원전에 대한 논쟁은 안전성과 수용성이 혼재돼 있어 혼란이 더 크다. 안전을 제외한 영역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논의해야 할 문제이지만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성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당국 역시 합리적이고 일관된 규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사회적 갈등을 가중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경제와 환경에 미칠 효익을 고려할 때 원전의 장점을 버리고 당장 신재생 에너지로 넘어가기도 쉽지 않다.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한 에너지 구축이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 한계다. 미래세대가 친환경적이면서 경제적인 원자력 에너지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원자력계 전체가 한마음으로 원전에 대한 국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고 역량을 강화하고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