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노원구의 미세먼지 청소차 기사의 사진
며칠 전 사회면 귀퉁이에 실린 기사를 꽤 한참 들여다봤다. 서울 노원구가 미세먼지 줄이는 도로청소차를 개발했다는 얘기였다. 성큼 다가온 봄과 함께 미세먼지 ‘나쁨’ 예보가 빈번해지고 있다. 청소차로 미세먼지를 잡는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더 의외였던 것은 개발한 주체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연구개발이 본업인 국책기관도, 예산이 많은 서울시도 아니었다. 일개 구(區)에서 했다는데, 그것도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꼴찌인 노원구였다.

미세먼지 청소차의 원리는 단순했다. 지자체마다 도로에 물을 뿌려 먼지를 씻어내는 살수청소차를 갖고 있다. 노원구는 여기에 ‘안개형 분무 노즐’을 장착했다. 청소차가 다니면서 길바닥뿐 아니라 공중에도 이 노즐로 물을 뿌린다. 사람이 호흡하는 높이의 대기 중 미세먼지를 씻어내도록 아주 작은 규모의 인공강우를 만드는 셈이다. 구제역 발생 지역의 분무소독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김성환 구청장이 제안해 시작된 프로젝트의 관건은 가장 적합한 노즐 구경(口徑)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려졌을 때 도로를 누비며 허공에 물을 뿜으려면 행인과 차량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했다. 노원구 녹색환경과 관계자는 “최대한 안개에 가까운 분사가 필요했다. 노즐 업체에 의뢰해 여러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를 거쳤다. 일반 소독기보다 구멍 크기를 대폭 줄이고 압력을 118기압까지 높이니 행인 옷이 젖지 않으면서 미세먼지를 흡착해 떨어뜨릴 수 있는 수증기가 분사됐다”고 설명했다.

노원구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살수청소차 7대에 노즐을 장착했다. 시범운영 결과 도로변 미세먼지 농도를 평균 25%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개발 비용은 대당 550만원씩 3850만원에 불과하다. 2012년 생활임금을 도입하며 ‘복지=돈’이란 공식에 과감히 저항했던 가난한 지자체는 이번에도 예산을 탓하는 대신 아이디어를 짜내 주민의 건강과 걱정을 챙겼다.

신문을 펼치면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한 요즘, 미세먼지 청소차는 모처럼 발견한 희망적 뉴스 중 하나였다. 지난해 그 난리를 쳤던 미세먼지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국가적 과제다. 중국에서 상당량이 유입되니 국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넉 달이 넘도록 리더십이 붕괴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외교적 수모를 당하고, 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없고, 탄핵 분열의 골은 깊어만 간다.

멈춰 서다시피 한 정부를 향해 “올봄에도 미세먼지를 마셔야 하느냐” “환경 문제 좀 챙겨보라” 촉구하는 것 자체가 한가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때에 노원구가 미세먼지 청소차를 공개했다. 청소차가 미세먼지를 얼마나 줄여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 여건이 열악한 작은 지자체가 대기환경이란 거대한 문제에 덤벼들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소식을 희망적인 뉴스라고 봤다.

국가변혁의 원대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이런 소소한 일에서 희망을 본다는 게 우스운 듯하지만, 아무리 원대한 그림도 소소한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설계한 대로 구현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영역은 우리 몸의 세포와 같을 텐데, 노원구의 실험은 한국사회 세포들이 아직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탄핵이 어찌 되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는 결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특히 공적 영역의 세포들이 중심을 잡고 제 역할을 감당해야 거대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서둘렀음에도 탄핵심판에 몰두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역사적 사건에 매몰돼 내 자리를 잠시 벗어나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추스를 때가 됐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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