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낯선 혹성 마카오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마카오 여행을 떠난 건 카지노를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아니 나는 그 흔한 고스톱도 못 친다.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마카오에서, 오래전 라스베이거스 여행에서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다른 혹성에 가 보았던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어릴 적 들어본 익숙한 단어인 ‘마카오 신사’는 해방 이후 멋쟁이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가 마카오 신사로 불렸다는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로 아버지는 홍콩과 마카오를 다녀오시면서 신기한 선물을 사다주셨던 기억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를테면 마카오는 어릴 적부터 내게 남아 있는 동양에 위치한 이국적인 이미지의 이름이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유럽문화와 중국의 동양문화가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낯선 혹성이다.

요즘 외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테러 위험성이 있으니 가지 말라는 대한민국 외교부의 지침이 찍힌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위험한 데는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나라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마카오 하면 호텔 카지노가 떠오르고, 극장이나 박물관이 아니라 이번에는 사람이 붐비는 대형 호텔 카지노에서 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낯선 혹성들을 닮은 화려한 호텔에 입성하기 전에 마카오 역사지구 관광의 출발점인 세나도 광장을 둘러본다. 유럽의 어느 작은 골목길을 지나면 나타날 것 같은 그곳에 조명이 켜지는 밤은 동화의 나라 같다. 유럽풍 건물들과 타일 바닥들, 예쁜 기념품 가게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들로 유럽에 온 착각을 할라치면 옆 골목은 시끄러운 중국이다. 광장 부근 베이커리에서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를 맛본다. 한국에서 에그타르트를 맛본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 것 같다. 에그타르트의 원조는 포르투갈의 제로니모스 수녀원이다. 달걀흰자로 수녀복에 풀을 먹였던 수녀들이 쓰고 남은 달걀노른자를 활용하기 위해 디저트를 만든 것이 시초라 한다. 에그타르트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마카오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도시다. 3월에 마카오에서는 16세기부터 있었던 어마어마한 인파와 함께 행진하는, 아시아에서 찾기 힘든 기독교 축제가 열린다. 차가운 야외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상과 함께 철야 거리행진을 한다. 마카오 대성당과 성 도미니크 성당 등 구시가지의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들 속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마카오의 신도시는 호텔의 마술을 걸기 시작한다. 마치 지팡이로 건드리면 근사한 호텔 하나가 생겨나듯 육지가 아닌 바다를 매립한 땅 위에 지어진 화려하고 눈부신 호텔들은 인공의 왕국들을 연상시킨다. 너무도 다른 콘셉트의 각기 다른 눈부시고 화려한 호텔들을 돌다 보면 정말 화성 목성 명왕성 등으로 연결된 낯선 우주에 떨어진 기분이 든다. 안데르센 동화 속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 같기도 하고 ‘들어와라 먹어라 마셔라 돈을 써라’, 그렇게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캄캄한 밤에 ‘윈’ 호텔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다 보면 파리지안 호텔의 에펠탑이 반짝거리는 게 보인다. 마카오에는 파리도 있고 베니스도 있다. 베네치안 호텔에 가면 인공의 베니스를 그대로 옮겨놓아 곤돌라를 탈 수도 있다. 호텔에서 다른 호텔로, 또 다른 호텔로 이어진 다리를 통해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인공의 호텔 공화국 마카오는 신기한 나라다. 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가장 부자인 ‘스텐리 호’ 회장 소유의 리스보아 호텔이 멀리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새장 모양을 한 형상적 의미는 호텔 카지노에 들어오면 갇혀서 돈을 다 잃을 때까지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라 한다. 로비에 들어서면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와 순금으로 만든 풍경 조각들이 보인다. ‘다이아몬드여 영원하라’는 007 영화의 주제가가 흘러나온다. 그 낯익은 음악을 들으면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실컷 놀아라’ 그런 소리로 들린다. 마카오의 호텔마다 가득 쌓인 명품들을 몇날 며칠 보면서 그 수많은 명품들이 명품도 그 무엇도 아닌 무의미한 사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카지노를 한 번도 안 하고 지나치기만 하면서 마카오에서 머무른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잃고 허무한 생각에 빠진 사람도 있으리라. 누구에게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른 봄밤의 꿈이다. 낯선 혹성 마카오에 다시 오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멀리 멀어지는 신비한 호텔의 마법이 풀리기 시작해 과자 집들이 한 조각씩 녹아내리는 것 같다. 꿈속처럼 그저 종이에 불과한 돈들이 공중에 흩어지는 환영을 본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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