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한신갑] 졸업식 축사 기사의 사진
저처럼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매년 두 번 새해를 맞습니다. 남들과 함께 달력을 바꿔 걸며 맞는 1월의 새해가 있고, 졸업식과 입학식을 거치며 맞는 3월의 새해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이 늘었지만, 왠지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말의 졸업식이 더 졸업식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도 ‘2월 말·3월 초’라는 ‘학교의 연말연시’와 그 시기가 겹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졸업생이 수천명 되는 큰 학교에서는 학교 전체 졸업식과 별개로 단과대학 또는 학과별로 학위수여식을 갖습니다. 이렇게 나눠 놓아야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가며 졸업장도 주고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대강당에서 내빈들을 모시고 격식을 차려 진행하는 앞의 행사에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영예로운 졸업과 새로운 출발에 대해 얘기하는 총장님의 식사가 있다면, 학과의 졸업생과 학부모, 친지분들을 모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에서 조촐하게, 정감 있게 치러지는 뒤의 행사에도 학과장의 인사말이 있습니다. 2년 임기로 학과장을 맡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그동안 모두 네 차례 이 인사말을 만들어야 하는 셈입니다.

번거로운 치레는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지만, 보내는 사람, 떠나는 사람이 몇 마디라도 서로 격려와 감사의 말을 나누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아서 식순에 넣기는 하는데,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런 얘기가 길어지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준비를 하며 나름대로 정한 원칙 하나가 ‘5분 내로 하자’입니다. 하지만 짧다고 그만큼 쉬워지는 것도 아니어서 매번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걱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막막해하다가 지치면 지난번에 썼던 걸 다시 쓸까 하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청춘수난시대”를 사는 요즘의 학생들은 미래를 품으라거나 꿈을 펼치라거나 하는 빈소리에는 시큰둥해하고, 열심히 착하게 잘 살라는 뻔한 조언에는 식상해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어설픈 위로에는 뜨악해합니다. 이런 것들 다 빼고, 학생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그들을 가르친 사람으로서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얘기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써본 것이 아래에 옮기는 인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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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학과장 한신갑 교수입니다.

무언가를 끝내고, 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경계점이 졸업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금을 긋는 셈이지요. 이런 시간의 의미 하나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시간을 다시 돌려놓아 줄 테니,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짧지 않은 삶에서 한 시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언제를 고르겠습니까?

저는 그 대답이 “바로 지금 여기로 하겠다”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고, 바꾸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그래야 젊은 사람입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금년이 작년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오늘보다 나은 내일, 금년보다 나은 내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자꾸 옛날 얘기하는 사람들은 저처럼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찾게 되는 틀을 앞으로 올 일에 그대로 투사하면 내일을, 미래를, 어제와 과거의 틀에 가둘 수 있습니다.

서울대생들에게는 좀 어려운 얘기일 수 있지만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즉흥극을 연기해가는 것이 성실하게 사는 것과 배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음에 해야 할 대사만 생각하느라 지금을 놓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사는 지금과 오늘이 모여야 현재와 다른 미래가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의 그 다른 미래, 열린 미래에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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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포함한 앞선 세대가 만든 세상이 아직 많이 모자라고, 여기저기 보기 싫게 어그러져 있어서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부모 세대인 우리 세대도 그때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졸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우리 세대가 살아 왔던 것과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인 만큼 그 다른 세상을 자기들의 새로운 가치로 채우면서 자기들의 기준에 맞는 세상으로 바꿔 보라는 부탁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들에게 거는 희망과 기대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욕심만큼 세상을 바꾸지 못한 스스로에게 전하는 반성과 자괴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 아, 예, 5분 내로 마쳤습니다.

한신갑(서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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