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추락한 닉슨과 박근혜 뒷모습 기사의 사진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가족도 한결같이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지금도 내 본능은 (사임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나라의 상처를 치료하고, 지난 시간의 비통함과 분열을 과거사로 돌리는 것이다.”

1974년 8월 8일 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런 요지로 하야 연설을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참모들의 과잉 충성에 의한 것으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던 닉슨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에게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사회는 워터게이트 탄핵절차가 진행되면서 2년 동안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닉슨은 자신의 억울함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지목됐던 그가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12일 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 청와대 대변인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검찰과 특검 조사로 닉슨보다 훨씬 더 죄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박 전 대통령은 끝내 사실상 불복을 선언했다. 8명 헌법재판관 모두가 만장일치로 그의 탄핵을 결정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헌법을 무시했다. 그의 파면에 대해 90% 가까운 국민이 잘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사저로 들어갈 때까지 전 국민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승복과 통합의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복과 대결을 선택했다. 국가와 국민보다 자신의 안위가 먼저였다. 정치적 목숨 연명과 검찰수사에 대한 방어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 참가자 3명이 사망하는 등 과격 시위가 심화되고 나라가 혼란에 직면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자극했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싸우겠다는 의지만을 표명했다.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세 차례 기자회견에서 보여줬던 사과와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짓말로 일관한 기자회견처럼 당시 표정도 하나의 연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청와대에서 사저로 가는 모습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박하기 위한 일보 후퇴의 표정이었다. 마치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승용차로 사저 앞에 도착한 그는 차 안에서 지지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차에서 내려 사저로 들어가기 전에는 과거 청와대 비서진과 친박 의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감사표시도 했다. 그는 아직도 여왕이었다. 너무도 뻔뻔한 미소와 당당한 표정에 다수 국민은 오히려 당황스럽고 참담함을 느꼈다.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의 행동과 어이없는 메시지는 그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시켜 줬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죄하고 승복했더라면, 차라리 소복이라도 입고 고개를 숙였더라면. 그럼 속없는 국민은 또 가슴으로 그를 안았을지 모른다. 차라리 다행이다. ‘자연인 박근혜’에 대해 더 이상 일말의 안타까움도 가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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