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 기사의 사진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에서 ‘쓰레기통 속 장미’를 빼놓을 수 없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전한 영국 ‘더타임스’의 한국전쟁 종군기자가 쓴 기사에 들어있는 말이다.

전문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Expecting democracy to bloom in Korea was like expecting a rose to bloom in a trash can)’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언론이 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했는데 유독 더타임스 기사는 신랄한 조롱 때문에 널리 읽혔다.

1955년 10월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에 참여한 벤가릴 메논 인도 의원은 “한국에서 경제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이 기사를 인용했다.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5·16쿠데타가 터졌을 때도 외신은 쓰레기통 속 장미에 빗대 한국 소식을 전했다.

사실 1952년 개헌 파동은 국제적인 조롱거리였다. 첫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던 이 대통령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도록 규정한 헌법을 개정했다. 반대파가 대다수인 국회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자유당을 창당했고, 정치깡패의 폭력시위를 조직했다. 심지어 대구형무소 수감자를 무장공비로 위장시켜 사살한 뒤 치안이 위태롭다며 계엄을 선포했다. 폭력시위대가 포위한 국회의사당에 등원을 거부하는 의원들을 잡아다 가두고 기립투표로 헌법을 바꿨다.

무려 65년 전 이야기다. 이후 1960년 4·19,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987년 “호헌철폐”를 외친 넥타이부대도 있었다. 그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 속에서 빛났다(South Korea’s democracy shines through in a crisis)”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어렵게 지킨 ‘빛나는’ 민주주의가 다시 쓰레기통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고승욱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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