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사저 정치, 웬만하면 안 하는 게… 기사의 사진
삼성동 사저 정치가 시작될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에 도착해서 친박계 의원을 통해 입장을 내놓았을 때 탁 걸리는 표현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의 모든 언론이 뽑아낸 제목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특검과 헌법재판소를 대하는 태도로 봤을 때 말이다. 물론 그의 진실과 다른 많은 이들이 보는 진실은 많이 다른 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걸리더라도”라는 표현은 참으로 오묘하다.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이며, 내가 구심점이 되겠으니, 지지자들은 알아서 행동하라는 뜻일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마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의 한 장면처럼.

이런 상황이 구체화돼가는 게 사저 정치다. 친박 의원들이 도열하고, 분야를 나눠 돕겠다는 의지까지 흘러나온다. 도처에 호위무사들이 나타나고, 김진태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대구·경북 지역 여론조사에서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1.4%라는 결과에다, 곳곳에서 태극기집회까지 열리니 못할 것도 없겠다. 사저 정치가 의도하는 성과를 낼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정치인 박근혜로 한 정파의 구심점이 되려는 생각이 있는 한, 이를 활용해 폐족 위기에서 한 번 더 의원 배지를 달아보고 싶은 세력이 있는 한, 매력적인 카드다. 측은해서 도와주겠다는데 뭐라고 반박할 수는 없지만, 도대체 개인적 의리와 공동체 이익과는 구별이 안 되는 걸까.

헌재는 선고에서 보충의견을 통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분명히 판단했다. 전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님에도, 사저 정치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양쪽 이념의 진영논리 프레임에 가두려는 영악한 정치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저급한, 그렇지만 막강한 영향력 있는 지역정서를 슬쩍 보태 재미 좀 보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음 수순은 ‘애국보수여 뭉쳐라’는 선언일 게다. 이른바 진보 패권세력도 사실 이런 게 나쁘지만은 않다. 자기네도 무조건 뭉쳐야만 하는 강력한 요인을 제공한다. 당장 제1야당 대표가 “이번 대선은 수구세력과의 전쟁”이라고 얘기하지 않나. 이렇게 되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진영논리 프레임에 걸려든 군중은 쫙 패가 갈려 맹목적 지지나 분별없는 증오와 분노를 맘 놓고 표출할 수 있다. 양쪽 기득권에게는 증오, 분노에 의한 지지가 자기들 정치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사저 정치가 성공한다는 것은 극도의 분열주의가 성공한다는 뜻이다.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남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양쪽의 배타적 정파가 권력 이익을 공유하는 거다. 사저 정치는 저급한 편 가르기 의식만 부추길 따름이다. 한 사회는 어떤 광기나 혼란, 일탈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정상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태생적 복원력을 갖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혹은 당대가 아니라 후대에라도…. 아마 사저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나, 사저 정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나, 이런 공동체의 복원력에 대한 두려움은 좀 갖고 있으리라.

“날 지지했던 이들에게 이제는 새 대통령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기를 당부합니다. (중략) 지금은 분열하고 서로의 차이를 논하기보다 화합이 더 절실함을 깨달아야 할 시점입니다.” 2000년 12월 13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는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판결에 불복하라는 지지자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역사책에 남을 만한 승복 연설을 한다. 언론들은 ‘미국의 승리’ 또는 ‘미국을 원상태로 돌려놓은 역사적 승복’이라고 규정했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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