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풍요 속 빈곤 기사의 사진
‘풍요 속의 빈곤’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증명한다. 생산물은 넘치는데 내 것은 없다. 근저에 인간의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100억원 가진 자가 1만원을 더 벌려고 하듯이 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 한다. 결과적으로 부의 편중을 불러오고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킨다. 인간은 위기 대비 차원에서 저축을 한다. 당연히 소비는 위축되고 불황이 덮친다.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케인스가 제시한 이론이다. 당시 경제학의 주류는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장 세이 등 고전학파였다. 이들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며 완전고용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1920년대 말 대공황은 이 믿음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케인스는 공급과 수요 외에 소비와 투자, 저축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풍요 속 빈곤을 경고했다. 보완책으로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케인스 이론을 받아들여 뉴딜정책을 선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위기도 자본을 독식하려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다.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며 2011년 뉴욕 맨해튼 거리를 뒤덮은 ‘월가를 점령하라’ 캠페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케인스가 주목한 이론은 약 100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유효했던 것이다.

풍요 속 빈곤이 경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보는 넘치지만 제대로 된 뉴스가 부족한 것도 풍요 속 빈곤에 속한다. 아무리 체크하고 단속해도 가짜 뉴스와 어뷰징이 난무한다. 의심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속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힘들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성 친구는 많은데 애인은 없다는 푸념도 풍요 속 빈곤 이론과 맞닿아 있다. 광장의 분노 역시 풍요 속 빈곤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넘친다고 한다. ‘듣보잡’ 후보가 있는가 하면 지지율은 합해도 기껏 5% 안팎이다. 풍요 속 빈곤이다. 케인스가 이런 상황까지 상상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박현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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