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더블스피크 기사의 사진
지난 1월 17일 헌재 탄핵심판 7차 변론.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최순실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이었는데, 이분이 밖으로 등장하면서 일이 이렇게 꼬인 거 같습니다.” 이용구 소추위 대리인 “그 말이 비선실세라는 거잖아요.” 정호성 “그러니까…허허.”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과 ‘비선 실세’. 똑같은 대상인데 어감의 차이가 상당하다.

미국영어교사협회가 주는 꽤 재미난 상이 있다. 더블스피크(doublespeak)상. 거짓말 상이란 뜻인데 애매모호하고 핵심을 벗어나며 본질을 흐리는 언어를 탁월하게 사용한 사람이나 단체에 준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사용한 더블 싱크(doublethink·이중적 사고)를 응용했다. 첫 수상자는 1974년 캄보디아 주재 미 공군 공보관. 민간인도 살상할 수 있는 공중 폭격을 ‘공중 지원’이라고 강변했다. 이라크전 때 미 국방부는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 손실’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CIA는 테러 용의자 고문을 ‘강화된 심문 기법’이라고 공식 표현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전략적 인내’는 무시를 부드럽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완곡한 표현에서부터 정치적 의도나 이데올로기까지 가미시킨 조어들은 차고도 넘친다. 5공 시절 정부나 언론에서 ‘가격 인상’ 표현은 금지됐다. 대신 ‘물가 현실화’로 쓰였다. 보안사의 대학생 강제징집은 ‘녹화사업’으로, YS의 목숨을 건 23일 단식은 ‘정치권 현안’ 좀 용감하게 쓰면 ‘재야인사 문제’였다. 장성들이 요정에서 술을 먹다 여야 원내총무(원내대표)들을 발로 차고 폭행한 사건은 단지 ‘국방위 회식사건’이었다. 그런 살벌한 용어에 비하면 최순실 예산을 몰아주기 위한 ‘문화융성’ 표현은 차라리 귀엽다.

파면된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강요나 뇌물 혐의에 ‘기업이 자발적으로’이라거나 ‘엮였다’고 주장한다. 검사와 피의자가 숱한 행위와 의도에 대해 수싸움을 벌일 텐데 최종 진술서에 어떤 표현으로 담길지 참 궁금하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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