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어쩔 수 없는 일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여전히 시끄러운 오늘도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고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사랑받거나 사랑받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함께 있으면서도 사랑의 방향이 달라서 싸우고, 같은 곳을 보면서도 사랑의 온도가 달라서 싸운다. 사랑의 방향이나 온도가 다르면 그 정도가 얼마나 미묘하든간에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은 충분히 뒤틀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사랑이라는 복잡한 함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의미를 해독하려 들게 된다. 단어와 어조는 물론 말의 간격과 침묵까지도. 스마트폰 세대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장이 돌아오는 시간을 재고, 그것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부터 그 관계가 가망이 있는지 가늠한다. 좋아하는 상대가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하지 않는 이른바 ‘읽씹’을 당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다가도 저쪽에서 갑자기 ‘선톡’, 그러니까 먼저 메시지를 보내오면 세상을 다 얻은 양 느낀다.

중국어 원제가 ‘리미의 추측’ 정도로 해석되는 영화 ‘사랑과 죽음의 방정식’ 도입부에서 택시운전사 리미(저우쉰)는 “9, 38, 52, 69, 80, 83 …”이라고 되뇌는데, 이 난해한 수열은 사라진 남자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은 날짜들이다. 남자친구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는 9일째에 첫 편지, 38일째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1460일째까지 만 4년간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는 54통의 편지를 보냈고, 리미는 그 날짜를 외우고 있다. 리미는 택시 운전석에 앉아 숫자들을 곱씹으며 어떤 규칙을 찾으려 한다. 편지가 배달된 간격으로 남자친구의 사정과 심경을 짐작하려 하고, 그렇게 실마리를 풀어 남자친구를 찾아내서는 “빨리 죽어버려”라고 소리치는 게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영문도 모르는 승객들에게 소리친다. 달성되지 않는 희망은 원망으로 변하는데 이 원망의 표면을 닦아냈을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징그러우리만큼 여전한 희망의 심리다.

다섯 줄짜리 시 ‘희망’에서 기형도는 무엇인가 망쳐버린 듯 첫 줄에서부터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라고 단념한다. 그러고는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고 자백하고, 다시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라고 단념하는데 거기엔 ‘너’와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미련의 감정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다. 미련은 열망의 여운과 같은 것이어서 희망을 거둔 뒤에도, 희망이 절망으로 전복된 뒤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그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절망스러워지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희망만큼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도 없다.

사랑은 분명 어떤 함수관계에 있다. 거기엔 희망의 값과 절망의 값이 있는데 우리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내생변수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대와의 관계에서 희망의 결과 값을 얻으려 애쓴다. 그러나 상대인 ‘너’라는 미지수 역시도 그 자체로 복잡한 함수라서 우리는 원하는 값을 쉽게 얻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는 왜 받아주지 않는가, 라고 투덜대지만 우리 사이와 주변, 그리고 ‘너’의 내부에는 너무도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사랑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 사랑이 받아줄 수 없는 것이라면 곤란한 일이다. 그 곤란함을 무릅쓰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주장할 때만큼이나 사랑을 거절할 때도 머리를 싸매고 또 머뭇거린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절망은 불가피하겠지만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게 되지 않을 것이면서 사랑하게 될 것처럼 행동해 거짓 희망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들 한다. 그러는 이들은 아무래도 불투명한 사랑의 관계에서 ‘희망고문’을 당해본 쪽일 것이다.

우리는 남녀관계 이외에서도 많은 희망고문을 당한다. 상대만 진실을 아는 그 거짓 희망들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버티며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또한 괴롭다. 그래서 더 기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하면서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사랑의 함수 안에서 절망으로 기울면서도 희망에 베팅하려는 것은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글=강창욱 산업부 기자 kcw@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