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언어 처방전 기사의 사진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는 진료실. 진료차트와 청진기는 없고 차와 쿠키가 준비돼 있다. 환자와 의사는 진료가 아닌 삶의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의사는 1시간 정도의 상담을 진행한 뒤 환자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처방해 준다. 일본 준텐도병원 ‘암 철학 외래’의 풍경이다.

이 병원에 ‘암 철학 외래’를 개설한 히노 오키오 교수는 지난 10년간 3000여명의 말기 암 환자를 만났다. 그가 환자들에게 처방한 건 ‘항암제’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언어 처방전’이었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정말 좋은 것은 쓰레기통 안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모두 공짜입니다’ 등의 말이다. 얼핏 들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진실은 돈을 많이 들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의미를 곧 깨달을 수 있다.

암 환자의 70% 이상이 우울증세를 호소한다. 치료가 가능하고 완치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 암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갈 희망을 잃고 우울한 상태에 빠진다. 증세를 해소하려면 환자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 처방은 생각의 전환에 효과적이다.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말을 들으면 지금보다 훨씬 즐겁게 살 수 있다.

인간은 말로 상처를 입지만 위로도 얻는다. 침묵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어떤 말이 삶의 마지막을 위로할 수 있을까. 말이 질병 자체를 치료할 수 없지만 회복의 길을 찾는 힘이 될 수는 있다. 만약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언어 처방전’을 만들어보자. 힘이 되는 명언, 성경 구절, 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힘들 때마다 그 문장을 되새긴다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힘겨울 때 우린 뭔가 비범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히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참견’에서 남은 삶을 받아들이고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에 투자하라고 제안한다.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고 거기에 온 힘을 쏟는 것,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 이 세상을 떠날 때 선물을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이 이 땅에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찾는 일일 것이다. 고독한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감성의 힘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희망이다. 희망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꿈을 꾸어야 생긴다. 추위와 강풍이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해도 감춰진 희망을 찾아낸다면 고난은 끝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체력이 좋았던 사람도 아니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요령과 수단이 탁월한 사람도 아니었다. 고난 중에서도 그 고난에 담긴 삶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의 나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샛길이 없는 통로는 없다. 하나님께선 언제나 한 곳은 열어놓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바로 예수님께 오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의 짐을 모두 그리스도께 내려놓으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다.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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