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영희 <1> 장애인 섬기게 된 장애인… “왜?” 하나님께 물었다

세 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5급… 필리핀 세부에 가서 보내신 까닭을 알았다

[역경의 열매] 황영희 <1> 장애인 섬기게 된 장애인… “왜?” 하나님께 물었다 기사의 사진
황영희 선교사(왼쪽 세 번째)가 지난해 11월 필리핀 세부 ‘파그라움 센터’에서 남편 박동호 선교사(오른쪽 첫 번째), 필리핀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나는 지체장애 5급 장애인이다. 세 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 지금도 다리 한 쪽이 불편하다. 초등학생 때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갔던 교회, 이후 영적인 방황을 하다 고등학생 시절 다시 만난 하나님. 그분을 좀 더 알고 싶어 신학을 전공했고, 청년시절엔 선교사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꾸면서도 장애인 선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장애인 선교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장애인인데도 말이다.

나는 필리핀 세부 국제공항이 위치한 막탄 섬에서 6년째 거주하고 있다. 다들 멋진 해변과 화려한 리조트를 떠올리겠지만 세부는 필리핀의 81개 주 가운데서도 높은 빈곤율을 나타내는 곳이다. 게다가 필리핀에서 네 번째로 많은 장애인이 거주하는 곳으로, 다수의 장애인들이 집안에 방치된 채 생활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뒤편으로 빈곤과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곳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부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라 불리는 스눅에 심으셨다. 스눅은 2012년 아동 사이버 성매매로 국제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은 곳이다. 굶주림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이버 성행위를 강요받은 아이들의 아픔이 남아있다. 또한 이곳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가난한 장애인들의 열악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 곳곳에는 마약과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이러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지붕만 씌워 공부방을 시작했고, 지금은 세부어로 ‘희망’이란 뜻을 가진 ‘파그라움 센터’를 건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과정들이 순탄치 않았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 결혼, 몸이 불편한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위해 내려놨던 선교사로서의 꿈, 꿈을 모두 접어버린 상황에서 찾아왔던 하나님의 부르심, 선교 현장에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냈던 세부 아이들…. 매번 ‘왜’냐고 하나님께 물으며 씨름했다. 하지만 숱하게 역경을 넘게 하신 하나님은 결국 열매를 맺게 해주셨다.

죽을 것같이 힘든 순간도 버티고 나면 뒤에는 항상 축복이 따라왔다. 물론 그 과정들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하나님은 늘 더 큰 위로를 주셨다. 지금도 잔잔하게 찬양하듯,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급하지 않게, 길을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가기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옆에 붙여주신 사람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다. 주님이 심어놓으신 밀알들이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걸어오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의 배를 채우심 같이 그렇게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내가 이 귀한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싶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을 구했다. 오랜 기도 끝에 내린 결론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끝나는 날까지 성실히 하라고 ‘역경의 열매’를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첫마음을 잊지 말라고 주신 채찍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또 살아갈 길의 이야기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세움이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의 첫 장을 열어본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약력=△1962년 전남 신안 출생 △전남 무안 한양신학교 졸업 △베데스다복지재단 전 사무장 △밀알복지재단 필리핀 세부 막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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