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잘 노는 게 이득 기사의 사진
일본은 우리에게 거울 같은 나라다. 우리보다 먼저 긴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겪고 있다. 일본이 지나온 길은 우리에게 배울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최근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소비 침체와 생산가능인구 부족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놓고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각종 업계 단체와 함께 지난달부터 ‘프리미엄 프라이데이(Premium Friday)’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엔 직원들을 오후 3시에 조기 퇴근시키라는 게 핵심이다. 부족한 노동시간은 월∼목요일에 조금씩 더 일해 채운다.

이 캠페인의 밑바탕에는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물가와 경제활동의 동반 하락)에서 탈출하는 발판을 만들어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물리적 시간으로 ‘2와 ⅓일’가량의 주말에 불과하지만 금요일 저녁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행을 가거나, 외식·쇼핑을 즐기거나, 동호회 등 외부 활동을 하면서 돈 좀 쓰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첫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였던 지난달 24일 기업의 참여는 저조했지만, 그 뒤로 제도 도입을 신청한 기업이 5374개(3월 10일 기준)까지 늘었다.

유니클로, 야후재팬 등 일본 기업들은 앞다퉈 ‘주 4일 근무제’도 도입하고 있다. 주 40시간 노동이라는 큰 틀을 깨지 않으면서 매일 10시간씩 일하고, 3일을 쉬는 방식이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인과 여성도 일터로 끌어들이려면 근로체계를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가 있다. 초과 근무에 따른 잔업수당을 포기하는 대신 삶의 질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와 주 4일 근무제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혹은 주 40시간 노동 준수)이다. 잘 놀고 잘 쉬는 게 기업가와 노동자에게 이득이고,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빠르게 일본을 벤치마킹했다. 지난달 2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내수 활성화 대책의 알맹이는 매달 한 번 금요일 오후 4시에 일찍 퇴근하도록 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는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한국 모두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의 금지’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이다. 일본(1719시간)과 400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장시간 노동은 ‘악마와의 거래’다. 사용자는 사람을 더 뽑지 않는 대신 초과근무수당을 주면서 연장근로를 시킨다. 전체 인건비가 줄어든다. 노동자는 온갖 수당으로 임금을 높일 수 있기에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지만 삶은 피폐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전국공공운수노조의 제안은 의미가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4일 주최한 국민토론회에서 평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면서 임금삭감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대신 청년고용 확대를 요청했다. 일자리와 임금, 노동시간을 공유 또는 나누겠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은 고용량, 생활의 질, 생산성과 직결된다. 근로기준법 50조1항 ‘1주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만 잘 지켜도 우리 경제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다. 관건은 임금 삭감(노동자), 고용 확대(기업)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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