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오세열] 하나님이 내 마음 문을 두드렸고, 나는 문을 열어 그분을 만났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숫자 낙서’로 유명한 오세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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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열 화가가 지난 15일 경기도 양평 강남로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 양평=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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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언덕 위에 그의 작업실이 있었다. 작업실 주인은 덥수룩한 콧수염, 희끗희끗한 더벅머리에 카키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숫자 낙서’ 그림으로 유명한 오세열(72) 화가였다. 작업실 한편에는 물감 더미, 빈 상자, 붓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적당히 어지러워야 집중이 잘 돼요.” 작업 중인 그림에는 장난스럽게 쓴 듯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림과 화구 사이에 서있는 그는 ‘아이 같은 어른’이었다.

지난 15일 경기도 양평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의 작업을 둘러봤다. 단색에 가까운 배경에 삐뚤삐뚤한 숫자, 단순한 얼굴 모양이나 꽃 새가 그려져 있다. “일상의 사물들, 단순한 것들을 좋아해요. 가능하면 못 그리려고 애써요.”

못 그리려고 애쓰는 화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잘 그리려면 기술이 들어가요. 기교로 그림을 그리면 순수함을 잃어버려요. 사람의 내면, 사물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어요.” 인물화에는 귀가 없거나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보였다. “교회에서 만난 장애아를 떠올리며 그린 거예요. 소외된 친구들이죠.” 하지만 그림 속 아이들은 우울하거나 연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세상을 봐야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자란 것은 모자란 대로 하나님이 만든 세계입니다.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화가의 얼굴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무구한 표정의 그는 어떻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의 그림을 보고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열아, 너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 이 말에 신난 어린이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 게 좋았다. 깨끗하게 도배한 벽지에 마구 낙서를 했다가 혼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미술교사였던 박돈(89) 화백을 만난 것이다.

“스승님은 화가의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겨울에도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하게 하셨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움츠리면 정신세계도 그만큼 쭈그러지고 좁아진다고 하셨죠.”

그는 3남1녀 중 장남이었다.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그림은 상놈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제 그림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소년은 고교 2학년 때 가출을 했다. “학교 미술실에서 잤어요.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랬는지 머리카락이 다 빠지더군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라벌예대에 진학했다. “새벽에 나가 그림을 그리다 밤늦게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림만 그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간이 지금 제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부모도 그제야 그의 길을 인정했다. 이듬해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목원대에서 강의를 시작, 78년 전임 교수로 임용됐다. “학교에서 세례증서를 요구했어요.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삶은 바뀌지 않았죠.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웠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죠. 아내가 기도하는 교회로 가서 기도실 문을 벌컥 열고 ‘집에 가자’고 소리친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 작가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느 날 교회 부흥회에서 신비한 체험을 했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간다’(계 3:20)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제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더라고요. 성령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변했다고 한다. 술과 담배를 끊었다. 아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성경 공부를 했고 기도를 배워갔다. 40대 초반의 일이다.

“삶은 만남과 선택입니다.” 오 작가의 말이다. “저는 한 분을 염두에 두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저는 문을 열었고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면서 살게 됐습니다. 제게 가장 축복된 만남이고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맞은 오 작가는 예수의 마음이 담긴 작품을 그렸다. 동심과 환상을 그린 파울 클레(1879∼1940)에 비견된다. 2010년 퇴임하기 전까지 그는 매년 미대 학생 10여 명을 전도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나서서 도와줬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불편해 했다. “후원이나 기부를 하는 건 하나님 앞에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물질을 주신 건 다 함께 쓰라고 주신 겁니다. 내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된다면 그건 큰 보람이자 감사입니다.”

아이 같이 순수한 그의 작품을 보려면 여기로 가면 된다. 제자 김동유(52)와 함께하는 전시회는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용산구 갤러리조은에서 열린다. 양평=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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