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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보수, 길이 안 보인다

“박근혜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어 새로운 보수가 싹트기까지 시간 걸릴 듯”

[김진홍 칼럼] 보수, 길이 안 보인다 기사의 사진
보수층 유권자들이 방황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 이후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있던 보수층은 사분오열되는 양상이다. 일부는 거리의 극우로, 일부는 부동층으로, 일부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대선 주자 쪽으로 기울었다. 보수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당이나 대선 주자가 없는 데 따른 후유증이다. 이런 현상은 ‘장미 대선’이 야야(野野) 대결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꼽힌다.

보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암울한 분석마저 나오는 데에는, 주지하다시피 최순실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 경제, 안보, 복지 분야 등에서 무능했던 박근혜정권이 알고보니 도덕성도 형편없고, 법치까지 무시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보수 전체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보수주의자임을 애써 숨기는 ‘샤이 보수’가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로 옮긴 뒤에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민간인 신분으로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처지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자세다. 합리적 보수층의 인식과 괴리가 너무 큰 탓이다. 측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18명이나 구속된 마당인데 부인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궤멸의 늪에 빠진 보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신(新)보수 출현을 가로막기는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탄핵당했다고 할 수 있다. 지도부는 진정한 반성의 의미로 해체 수순을 밟거나, 최소한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천막당사’로 옮겨 뼈를 깎는 보수 재건의 길을 걷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환골탈태는 뒷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시간이 흐르면 진실이 밝혀진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리면 반전의 계기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을 테지만 그런 날은 절로 오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한 10% 안팎의 지지율에 현혹돼 연명에만 급급한 행태를 거듭하면서 보수는 점점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바른정당에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당의 성찰과 사과, 희생, 혁신이 우선이다.

한국당 의원들 중 국회 본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에 찬성한 의원들과 초·재선 의원들은 각성해야 한다.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의원들의 경우 탄핵소추안에 반대한 친박 위주의 한국당에 계속 몸담고 있는 게 과연 온당한가. 탈당이 힘든 결단이라지만 본인의 행동에 합당한 실천을 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초·재선 의원들의 경우 지난 총선 당시 친박계로부터 공천을 받았더라도 지금은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여 있기보다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왜 의원이 되려 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개인보다 보수의 활로를 마련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용단을 내려야 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월급만 타가는 ‘생계형 정치인’에 불과했다는 치욕적인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당 지도부나 소속 의원들 입장이 조만간 확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박근혜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는 탓이다. 한국당 체질이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만고만한 당내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5·9 대선에 나설 후보를 고르고 있다. 진보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세력, 아직은 희망사항인 것 같다. 화사한 봄날,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를 주도해온 합리적 보수층의 근심과 걱정이 깊어가고 있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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