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과 신앙 이야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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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우증권에서 과장으로 일할 때다. 그땐 신앙이 없었는데 졸지에 신우회 조직을 주도하게 됐다. 영업 때문에 벽산그룹 사옥에 갔을 때 일이다. 점심시간에 소강당 앞을 지나다 6∼7명이 성경책을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표정이 너무 좋았다. 평안하고 기뻐 보였다. 벽산그룹 신우회라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저런 표정을 만들었을까 싶었다. 회사로 돌아와 인사과장에게 우리 회사에도 신우회가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면 참가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은 없었다. 그래서 “그럼 교회 다니는 사람 명단을 달라”고 했다. 이 이야기가 ‘이상구 과장이 신우회를 만들려 한다’는 식으로 와전됐다. 이 때문에 알게 된 크리스천 직원들과 실제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 80여명이 모였다.

신우회에선 전도부장을 맡으라고 했다. 전도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교회부터 등록해야 했다. 당시 최건호 목사가 담임하던 서울 대치동 충무성결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했다. 온 가족을 데려가 모두 등록시켰다.

하나님에 대한 내 열정은 뜨거웠다. 그 덕에 새신자로 등록한지 2년 만에 교회 남전도회 회장이 됐다. 교회 대학·청년부장을 맡았을 때엔 1년 만에 청년 성도 수를 6∼7명에서 60여명으로 부흥시켰다. 2년 후엔 300여명이 됐다. 쌍용그룹으로 옮긴 이유도 전도 때문이었다. 쌍용그룹은 불교성향이 강했다. 나는 이직 전에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찾았다. 금식하며 기도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쌍용증권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이직 9개월 만에 쌍용증권선교회를 창립했다.

하나님은 일본 선교에 대한 눈도 열어주셨다. 1991년 산업증권 지점장일 때 일본어 예배에 참석하고 93년 오사카에서 열린 고시엔미션 선교대회에 갔다. 이후 일본 복음선교회(JEM)를 창립, 초대 이사장으로 5년을 섬겼다.

어려움도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산업증권이 청산되면서 갑자기 실직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셨고 지금의 솔로몬채권연구소를 창업케 해주셨다. 2002년엔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한직선연)의 대표회장이 됐다. 그때 서울대 암병동에서 3개월간 80여명을 전도했다.

선교사 꿈은 더 구체화됐다. 2010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기아대책에서 선교훈련을 받았다. 한국어교수 양성 과정도 수료해 아내인 조영혜 권사와 함께 필리핀국제대학(PIC)에서 한국학과장으로 평신도 자비량 선교 사역을 했다. 귀국 후엔 한직선연 이사장을 맡게 됐다. 한직선연은 직장선교단체다. 일터 사역을 통해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꿈꾸는 곳이다. 평일에는 일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성취하려 애쓴다.

최근에는 이를 더 잘 감당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붓글씨로 한글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 71세이지만 중국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이전에 받은 선교사훈련에 더해 요즘은 중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이제껏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다.

이상구 이사장(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약력=△상업은행, 대우·교보·쌍용·산업증권 상무, 일본복음선교회(JEM) 창립 및 초대 이사 △솔로몬채권㈜ 대표이사, ㈔한직선연 이사장, 서울 충무성결교회 선임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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