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순원] 일자리 균질화와 연대임금 기사의 사진
3월의 캠퍼스는 소리 없는 전쟁터다. 인기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은 쟁탈전을 벌이고, 스펙을 쌓는 동아리는 장사진이다. 사회변혁을 외치며 ‘동지’를 모집하던 동아리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밴드와 통기타도 좌판을 걷었다. 취업이 대학의 목표인 시대다.

2016년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대인 9.8%를 기록했다. 실제 고용 사정은 더 심각하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이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합치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30%가 넘는다.

용케 일자리를 얻어도 대부분 만족하지 못한다. 2016년 8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는 9.95%에 불과하다.

극소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 일자리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계곡이 존재한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은 493만9000원인데 300인 미만 중소사업체 근로자 월급은 240만7000원으로 48.7% 수준이다. 사회보험 적용도 대기업은 99%가 넘는데 중소사업체는 40% 정도다.

구직자가 대기업 진입에 목을 매는 건 당연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요구는 책임전가다. 세계적 경기 침체와 저성장,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 위축,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고려하면 노동시장 구조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이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고 저임금 불완전 일자리만 확대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 배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하청제도가 있다. 산업화 시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하청제를 매개로 과실을 공유해 중소기업 근로자도 중산층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행진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파산했다. 1997년 이후 하청제는 대기업의 위기관리 비용을 전가하는 터널로 기능해 중소기업 일자리는 폐허가 됐다. 대기업 근로자의 고용안정에 필요한 비용을 하청 중소기업이 부담한 셈이다.

이런 노동시장을 그대로 둔 채 일자리 해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게토(ghetto)화된 중소기업 일자리 재생을 위한 ‘일자리 균질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임금, 근로조건, 고용안정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원·하청 일자리 개선 협력 기구를 구성해 비용이 하청으로 전가되는 통로를 단절해야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6000만원 중 4000만원을 시장임금으로 표준화하고 2000만원을 중소기업에 이전시켜 중소기업 초임이 최소 3000만원으로 조정되도록 해야 한다.

원·하청 기업의 ‘연대 임금’ 전략을 통한 일자리 균질화는 노동시장 문제의 유력한 탈출구다. 원청회사의 제품과 서비스 품질이 하청 근로자에게 달렸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연대의 이유는 충분하다.

중소기업 경영 혁신도 필수다. 우리 시장에는 역량 있는 중소기업이 많다. 이들의 일자리 수준은 평균 이상이다.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저임금에 기반한 비용우위다. 저비용 전략으로는 신흥 공업국 기업과 경쟁하기 어렵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월평균 17만원 수준이고 근로자 평균 월급은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지금 노동시장은 어두운 터널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십수만개 늘려도, 근로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도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만을 외쳐서는 공허하다. 지금부터라도 노동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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