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국가주의를 깨뜨려라! 기사의 사진
정치학에서 국가(정부 및 정치 시스템)의 성격을 진단하는 국가론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국가론 연구는 두 유형의 국가 모델에 집중됐다. 하나는 고도성장을 성취했던 동아시아 신흥국의 국가 기능을 규명하는 것이다.

마침 중국도 이 모델을 쫓던 참이라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들의 성공은 대부분 수입대체 산업화론에 매달려 있을 때 ‘수출지향적 산업화’라는 적확한 비전을 세우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체제가 금융과 산업정책을 묶어 제조업 육성에 집중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이들 국가는 ‘발전국가’로 명명되었다.

국가 연구의 다른 축은 서구 복지국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북유럽 복지국가가 어떻게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통해 국민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자유, 공정, 연대의 가치에 입각한 타협과 조정의 정치 시스템이 주목받았고, 이들 국가는 합의제 국가(corporatism)라 불린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국가론이 관심을 얻는다. 개별 국가가 보이는 무력함이 문제의 초점이 된다. ‘국가는 죽었다’라는 명제까지 나올 정도로 국가의 역량 쇠퇴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물론 국가는 죽지는 않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무기력증을 노출하고 있다. 테러, 난민, 장기적인 경제 침체, 양극화 등 난제는 쌓여가는데 정치는 포퓰리즘에 허덕이고 있다.

국가를 무력화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세계화 자체가 국가의 통치(governance)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를 끊임없이 야기하고, 이를 관리하기 어렵게 하는 데 있다. 아울러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 주도 사회가 되고 정보통신 혁명의 효과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것도 요인이 된다. 지금은 국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역량보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역량이 더 크다. 국가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스스로의 지식과 판단으로 살아가는 스마트 행위자들이 곳곳에서 출현했다. 이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멍청이’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국가의 역할 쇠퇴는 새로운 정부론이 각광받도록 했다. ‘작은 정부론’ ‘기업가형 정부론’ ‘서비스 정부론’ 등이 그것이다.

한국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이미 우리도 과거의 국가주도형 발전국가 시대를 훌쩍 넘어선 환경에 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이미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국제적인 흐름과 사건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정부의 통제력은 한계를 드러낸다. 한때 자부했던 관료체제의 효율성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아직 ‘국가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관념이 넓게 퍼져 있다. 70년 역사의 한국 현대사에서는 국가와 대통령이 워낙 막강하다보니 환경이 달라진 지금도 ‘강한 국가, 강한 리더십’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성이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우파든 좌파든 국가주의자들이 지금도 득세한다. 박근혜정권의 몰락도 결국 시대착오적 국가주의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대통령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오도된 인식이 비극의 뿌리다.

지금 유력 대선 주자들 모습에서도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권력만 잡으면 천지개벽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미·중·일도 마음대로 다루고, 적폐도 청산하고, 공무원은 80만명이나 늘리고, 가계부채는 탕감해주고, 전 국민 기본소득을 130만원이나 주겠다는 등 ‘어마무시’한 약속들이 즐비하다.

어떤 일에든 성공하려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별해야 한다. 해야 할 일 가운데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것이 일을 성공시키는 관건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하면 길을 잃는 것이다. 할 수 있는지를 따지지 못하고 무모하게 덤벼들면 백일몽이 될 뿐이다. 어느 시대나 국가의 성공을 이끄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하고 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도 없으면서 희망사항을 비전으로 착각하고, 힘도 없으면서 허장성세하는 리더십이다.

대선 주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국가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엄정한 성찰이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과도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자율과 혁신, 포용과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무대에서 이제 국가는 주연이 아니다. 민간의 다원적인 행위자들이 주연이고, 국가는 이를 돕는 조연일 뿐이다. 이를 이해해야만 진정한 ‘협치’가 가능하다. 국가에 대한 발상을 전환한 후보를 보고 싶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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