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영희 <2> 목포여고 시절 만난 인생의 멘토 전도사님

삶 속에서 그리스도 향기 나던 분… 고2 때 세례 받고 전도에 불 붙어

[역경의 열매] 황영희 <2> 목포여고 시절 만난 인생의 멘토 전도사님 기사의 사진
황영희 선교사(오른쪽 첫 번째)가 목포 중앙여중 재학시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황영희 선교사 제공
내가 태어난 곳은 전남 신안군 지도읍 사옥도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서 다시 산 세 개를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또래 남자친구들에게 “결혼하기 전까지는 여자 데리고 집에 오지 마라. 도망간다”고 농담할 정도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곳이다.

교회 가는 길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제일 친한 친구 손에 이끌려 산 하나를 넘어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당시 예수님을 영접하진 못했지만 나는 모범생처럼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무릎이 잠길 정도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눈을 뚫고 교회에 갔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당시 주일학교 교사였던 전진한(사옥교회) 목사님께선 큰 전지에 그림을 그려 실감나게 ‘천로역정’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목사님은 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드라마 예고편처럼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사실 처음 교회 다닐 때만 해도 가족들의 반대가 컸다. 우리 집은 종가였고 가족 중 누구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굿을 하고 1년에 10여 차례 제사를 지내고 조금만 아파도 어디 가서 점을 봐야 낫는다고 믿는 집안이었다. 당연히 내가 교회 다니는 걸 좋아할 가족도 없었다. 하지만 신앙을 향한 내 뜻을 꺾진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 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떠받들어 키워졌다. 오히려 나의 장애가 교회에 계속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내게 영적 방황기가 찾아왔다. 사옥도를 떠나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다. ‘신이 있는가’를 두고 생각이 깊어졌고 중학교 2학년 때는 불교의 매력에도 빠졌다. 방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목포여고 시절 친구와 함께 가게 된 교회에서 내 인생의 멘토인 노영학 전도사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전도사님은 쉼 없이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도통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기만 하는 내게 ‘너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아래 있는 자녀’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고 또 심어주셨다. 그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분이셨다. 교인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전도사님을 보며 삶을 배웠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결국 ‘투덜이 스머프’는 ‘똘똘이 스머프’가 됐다. 고2때 세례를 받고 나서부턴 전도에도 불이 붙었다. 동네 친구와 학교 친구, 심지어 절에 다니던 친구들까지 내가 전하는 성경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안타깝게도 그때까지 우리 가족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그런 가족들을 보면서 ‘예수 믿는 가정이 됐으면 좋겠다’고 참 많이도 울면서 기도를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고개를 넘어왔다. 그 중 가장 가팔랐던 고개는 엄마가 갑자기 이상한 종교를 믿게 됐을 때다. 건강이 나빠진 엄마가 치료를 받느라 서울에 잠깐 계시는 동안 당신 병을 낫게 하겠노라며 일본에서 건너온 남묘효렌게쿄에 빠지신 것이었다. 그건 진리가 아니라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얼마나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른다. ‘남묘효렌게쿄를 봉창하면 누구나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고 억지 부리는 엄마를 하나님 앞으로 모셔오기까진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렇게 하나님은 스물두 살 때까지 ‘나홀로’였던 신앙에 엄마 오빠 할머니 등 한 사람, 한 사람씩 열매를 주셨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