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정치권, 싹수가 노랗다 기사의 사진
가수 전인권이 광화문광장에서 ‘걱정 말아요’를 불렀을 때 우리는 그의 노랫말처럼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다짐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래는 춤추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는 말을 믿었다. 절망 속에서 꿈틀거리는 희망과 정의를 봤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가. 대통령 선거를 불과 48일 남겨둔 지금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주와 허위가 난무하고 네 탓이 판을 친다. 보수와 진보 모두 별반 차이가 없다. 그야말로 싹수가 노랗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는 대통령 후보들 언행이다. 미래는 없고 과거만 넘친다. 관용이 없으면 확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있다. 문재인 후보가 부산대통령, 광주홀대론을 말하면서 동서화합을 강조하는 건 이율배반이고 모순이다. 지역주의는 적폐 중의 적폐다. 역사적 트라우마도 있다. 적폐청산에 선후가 있다면 첫째 과제다. 그러나 요란하게 떠들고 말하는 순간 덧나는 경우가 많다. 정책으로, 행동으로 조용히 실천해야 할 사안이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했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표를 의식한 지극히 정치적 언사다. 더 이상 광주를 정치에 이용해선 안 된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고 경상도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광주를 자유롭게 할 책임과 의무는 야당에 있다.

사드도 그렇다. 여러 보고서를 종합하면 사드는 중국에 치명적이지 않고, 미국 또한 핵심 이익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반면 우리에겐 국민의 생명과 자주권이 걸린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내부 특히 정치권은 싸움질이다. 바둑으로 치면 미국이나 중국 측에 패감만 키워줬다. 대마를 살리기 위해 큰 집을 내줘야 할 판국이다. 정부의 투명하지 못한 정책 추진이 문제였지만 정치권의 무책임과 비굴함도 한몫했다.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을 이해시키겠다는 것은 원론 수준의 말이다. 미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약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반대다. 중국 앞에만 서면 약해진다. 친미 사대주의가 친중 사대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비판이 이래서 나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는데 선언만 있고, 구체성이 없다. 순진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교언(巧言)이거나 흰소리일 뿐이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미래를 장담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정치권 인식을 보면 ‘제2의 박근혜’가 나올지 않을까 걱정된다. 구체제 적폐의 청산이어야 하는데도 ‘박근혜 청산 프레임’에 국한시키려 한다. 정치권 스스로 청산 대상에서 빠지겠다는 꼼수다. 구체제 적폐 청산이 아닌 특정 정권의 적폐 청산론은 권력을 잡는 것엔 유효하지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할지도 모르는 위험스러운 시도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에게 이 나라, 이 국민이 안중에 있는지 묻고 싶다. 표가 된다면 하늘의 별도 따 주겠다는 심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장밋빛 약속은 솔깃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솔깃함은 귀를 멀게 하고, 달콤함은 이빨을 썩게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통령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매우 제한적이다.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대한민국은 왕조국가가 아니다. 더욱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 모두 그러겠다고 선언했다. 불가능한 것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제왕이 되겠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광장의 꿈을 접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