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용팔이 사건 기사의 사진
1987년 4월 23일 오후 3시35분 통일민주당 인천 동·북구 지구당 사무실. 청년 150여명이 도끼로 출입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각목과 쇠파이프로 당원들을 폭행하고 집기를 불태웠다. 다음 날 서울 관악지구당 사무실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나흘 동안 18개 지구당 난동에 동원된 청년만도 2000여명. 그들은 한결같이 경찰 출동 10분 전에 빠져나갔다. 이듬해 9월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전주파 두목 일명 ‘용팔이’인 김용남씨가 체포됐다. 검찰은 신한민주당 이택희·이택돈 의원이 주도했다며 사건을 급히 종결지었다.

진실은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뒤 드러난다. 87년 전두환 대통령과 여당이 내각제 개헌 카드를 꺼내자, 이민우 신민당 총재 등은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김영삼·김대중씨를 비롯해 70여명의 신민당 의원이 탈당했다. 국가안전기획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기부는 이승완 호청련 총재에게 창당 방해 폭력을 지시했고, 행동대장이던 용팔이는 이를 실행했다. 중심에는 장세동 안기부장이 있었다.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끝까지 윗선을 불지 않았다. 일부 청소년은 그를 영웅 대접하기도 했다.

30년 전 ‘용팔이 사건’이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통해서다. 그는 친박 지지층의 조직적 항의에 대해 “용팔이 사건이 생각났다”고 했다. 또 “친박은 삥땅 좀 쳐볼까 해서 모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 대해 “용팔이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1987년이 2017년으로 흐른 사이 용팔이 사건의 각목이 친박계의 거친 저항으로, ‘문빠’들의 문자 폭탄으로 변모한 듯하다. 30년 전 용팔이는 이미 회개하고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용팔이 사건이 아직도 회자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