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피의자의 심리 기사의 사진
검찰청과 법원 청사가 서소문에 있을 때니 1990년대 초반 얘기다. 당시 서울시 담당 기자였던 내가 들은 한 국장의 경험담이다. 구(區)에 근무할 때 부하직원의 수뢰사건 참고인으로 검찰에 불려갔는데 평생 잊을 수 없는 모멸감을 당했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쯤의 검사가 40대 중반인 자신에게 다짜고짜 손들고 벽을 보고 딱 붙어 서 있게 했단다. 1시간쯤 그렇게 있으니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리고 “이런 꼴을 당하려고 행정고시를 했나”라는 자괴감에 눈물이 나오더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 내가 정말 뭘 잘못한 게 없나” “잘못한 것이 분명히 있는데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라며 스스로를 타박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뭐라도 빨리 불고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사기관에 불려간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다. 소환통보를 받는 순간 공포에 빠진다. 일본의 권위 있는 범죄 심리학자 하마다 스미오는 저서 ‘자백의 연구’에서 피의자들의 심리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병의 구금으로 인한 고립감, 인격적 존엄의 박탈에 따른 굴욕감,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는 무력감, 불투명한 조사시간에 대한 불안감,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좌절감, 호의와 강박을 반복하는 수사관에 대한 당혹감 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강박감 때문에 수사기관이 요구하는 대답, 즉 허위자백을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일단 나가고 보자’는 절박함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는 조사를 받고 나오면 자책하게 되고 심지어 저명인사들의 경우 더러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검찰 조사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달랐다. 7시간 동안 조서를 꼼꼼히 살폈다. 귀가 후 집 앞에서는 옅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한 변호인은 “검사님 및 검찰 가족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를 받았을까. 여느 피의자와는 다른 박 전 대통령의 심사가궁금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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