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No’ 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없는가 기사의 사진
“포퓰리즘의 화약고가 한국 도처에 널려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한국에 던진 경고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율리아나 리 선임경제연구원은 “포퓰리즘 경계령을 인기 영합적 정책으로 모면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고언(苦言)이다.

우려는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는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교육, 일자리, 가계부채 등에 대한 해결책이 거침없다. 수많은 난제들이 조만간 해결될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온통 ‘해 주겠습니다’는 말만 난무하지 ‘이건 안 됩니다’라는 쓰디쓴 공약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달콤한 유혹이 유권자의 눈길을 끄는 것을 보면 대선 주자들이 왜 그토록 공약 경쟁에 열을 올리는지 이해되는 면도 있다. “(구체화된) 공약 정책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지만 문제는 그런 정책적인 발표를 하면 뭐하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데…”라는 한 대선 주자의 고백이 귀 언저리를 때린다. 장밋빛 공약이 먹혀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22일 발표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교육 공약을 들어보자.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폐지하겠다는 얘기다. 학부모들의 귀가 솔깃할 법하다. 이들 학교가 교육 양극화를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방향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가 빠져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2014년 교육감에 당선됐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학교는 단 2곳에 불과하다. 학교와 학부모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현재 전국 단위 자사고 10개, 광역 단위 자사고 36개, 외고 31개, 국제고 7개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고 전환이 공약처럼 가능할까 싶다.

“과로 시대에서 쉼표 있는 시대로 바꾸겠습니다. 10년을 일하면 1년을 쉴 수 있는 ‘전 국민 안식제’를 만들겠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공약이다. 하지만 재원 마련을 위해 2∼3년간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방안에 수긍할 수 있는 근로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전제조건인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은 관행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제의 틀을 바꾸는 것과 함께 교사 재교육, 교과목 변경 등 다양한 것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내놓은 2-5-5-2 학제 개편안이다. 대학입시 등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역시 ‘어떻게’가 없다.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87.3%가 ‘정치인들은 나라 걱정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데 공감했고 73.4%는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답했다. 리더십의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는 리더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솔직하게 말하고, 잘못은 즉시 시정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게 신뢰를 높이는 요건이라고 했다.

“국민 여러분! 일자리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교육과 입시에 찌든 우리 교육환경도 단기간 내에 바꾸기는 정말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당선된다 해도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약속합니다.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러한 도전들을 국민과 헤쳐나간다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노(No)’도 마다치 않는 이런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 아닐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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