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규의 문화공방] <97> 엄마가 지켜줄게 기사의 사진
인양된 세월호
엄마는 바다에서 눈을 거두지 않았다. 3년 동안 눈물로 한없이 응시했다. 비로소 엄마의 바다는 길을 열었다. 고통으로 점철된 이별과 기다림 끝에 드러난 해후의 징후는 온 나라를 눈물로 얼룩지게 했다. 며칠 전 긴 침묵을 깨고 세월호가 금이 간 얼굴을 드러냈다. 엄마의 절규는 그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깊숙이 도려냈다.

모성애를 뛰어넘는 희생이 지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위험에 닥친 자식을 위해 투신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것을 용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의 본능이자 모성애다. 포셔 아이버슨의 저서 ‘엄마가 지켜줄게’는 엄마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자폐아를 둔 엄마는 아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길고 긴 사투를 펼친다. 투신보다 더 모진, 끝없는 엄마의 투쟁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나도 장애아를 키우는 아버지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자폐아다. 생후 30개월 때 아이가 발달장애아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세상은 말없이 무너져 내렸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등교를 함께한 지 12년이 되었다. 또 죽는 날까지 그 아이를 어디로 데리고 다녀야 할지 모른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의 아픔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자식과 영원히 이별한 가족에게 어떠한 위로로도 아픔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적 위기 관리시스템의 부재와 국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많은 국민이 유가족과 함께 깊은 불신의 세월을 보냈다. 대통령이 탄핵되자 세월호가 인양되었다는 한탄의 목소리는 국민의 삶이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는 자조 섞인 방증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어떠한 국민이든 무책임한 정부와 비겁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을 움직인다. 인정과 배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가.

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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