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朴의 기억 기사의 사진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나무꾼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 허물어져 가는 라쇼몽 처마 밑에서 나무꾼이 혼란스러워하며 중얼거린다. “이해를 못하겠어. 아무래도 이해가 안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찍은 라쇼몽은 인간의 이기적인 자기 변론과 합리화, 이를 위해 각색되는 기억을 얘기한다. 대낮 숲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무라이. 이 하나의 ‘팩트’를 두고 연루된 네 사람이 주장하는 사실은 제각각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라쇼몽 효과’라는 용어는 이 영화에서 유래됐다.

기억을 취사선택하는 능력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누구보다 탁월한 듯하다. 여러 진술과 증거의 종합이 자신을 가리키는데 정작 본인은 팔짱을 끼고 먼 산을 본다. 앞뒤 시간이 재구성되고 새롭게 편집된 기억의 시나리오 속에서 그는 늘 결백하고, 잘못은 남의 것이다. 최순실 일당이 국정을 쥐고 흔든 지난 4년도 “대통령으로서 주어진 소명을 수행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이 반드시 밝혀지길” 여전히 기다린다. 21시간 조사를 마치고 서둘러 검찰 청사를 빠져나가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노여움과 당혹감을 봤다. 자신의 기억과 조서에 기록된 사실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낸 듯한. 종이가 너덜너덜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서를 고치고 또 고친 건 자기 기억이 객관적 사실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일 게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신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는 문자메시지는 그래서 애잔하기까지 하다.

곧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있을 거 같다. 그는 자택 안에서 저항을 이어가려 하지만 그의 기억 밖에서 싸움은 이미 끝나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 이기적 기억이 자신마저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게 만들 뿐. 영화 속 평민은 말한다. “인간은 자기 죄는 잊고 거짓말을 하죠. 그편이 편하니까.”

지호일 차장,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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