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유교 마을 녹인 ‘찰떡’ 봉사

퇴계 후손 집성촌 한가운데 있는 안동 온혜교회

뿌리 깊은 유교 마을 녹인 ‘찰떡’ 봉사 기사의 사진
이상철 목사(오른쪽)와 정영희 사모가 지난달 말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온혜교회 앞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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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온혜(溫惠)교회. ‘따뜻한 은혜’의 뜻을 담은 교회 이름이 처음부터 이상철(57) 담임목사의 마음속에 와 닿진 않았다.

교회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생가가 나오고, 차로 10분쯤 가면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 도산서원이 있다. 교회 앞뒤로는 천년 고찰 청량사와 용수사가 버티고 있다. 이 목사의 표현대로라면 바깥어른(남편)들은 유교 문화에, 안어른(아내)들은 불교문화에 익숙한 동네다. 퇴계 가문의 후손인 진성 이씨의 500년 집성촌 한 복판에 60여년 전 세워진 온혜교회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찰떡’ 정성에 마음 문을 열다

2009년 1월. 교회에 부임한 이 목사는 낡고 금이 간 교회 건물보다, 본인이 진성 이씨가 아닌 전주 이씨라는 사실보다, 동네 어르신들의 꽁꽁 닫힌 마음에 신경이 더 쓰였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에 부르셨을까.’ 이 목사는 아내인 정영희(56) 사모와 함께 곰곰이 묵상했다.

‘쉰 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전도사 신분인 나를 청빙한 이유는 뭘까. 30년 전부터 전도사로 포항 경주 청송 등 경북 일대 농촌 교회만 섬겨왔던 나를 도대체 왜 불렀을까. 반드시 이곳으로 인도하신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 목사 부부는 확신을 갖고 우선 동네 인사를 다니기로 했다. 이른바 ‘찰떡 인사’였다.

매주 금요일 찰떡을 만들어 박스에 담은 뒤 온혜 1·2·3리 120여 가구를 빠짐없이 돌고 또 돌았다. “양반 마을의 민심은 달라도 확실히 달랐어요. 손님이 오면 나와서 맞이하는가 하면 구순 나이의 노인도 예의를 차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왔다고 하니 ‘우리는 필요 없다’며 복음 수용은 완강히 거부하더라고요.”

문전박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찰떡 돌리기를 1년째 이어간 이 목사 부부는 변화를 감지했다. 어느 날부턴가 찰떡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생기는가 하면 혹 방문을 빠뜨리는 집은 “우리 집엔 왜 안 들르느냐”고 묻기도 했다.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주민도 이 목사와 마주치면 담배를 슬그머니 등 뒤로 감췄다. 서서히 이 목사 부부를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품어줬던 것이다.

외로운 노인들의 친구

1년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빈 이 목사 부부는 마을의 현실을 마주했다. “1인 가구(독거노인)가 절반 이상이었어요. ‘그분들을 위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이 목사는 지인으로부터 근처에 있는 온천 티켓 30장을 선물 받았다. 주일예배 때 ‘온천 티켓이 있으니 목욕 가실 분 모집한다’고 광고하자 그 주에만 7명이 모였다. 목욕 봉사를 시작한 계기다. 노인대학인 ‘온혜무지개대학’을 운영하며 반찬 나눔 및 간병 봉사도 이어나갔다.

최근 들어서는 이 목사보다 정 사모가 바쁠 때가 많다. 지난달 23일 이 목사 부부와 함께 김장춘(88) 할머니 집을 찾았다. 자식들을 객지에 보내고 홀로 사는 김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정 사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할머니의 엄지손가락을 쥐고 혈당을 체크한 뒤 혈당체크 일지에 숫자를 적었다. 노트에는 지난해 초부터 적어 내려간 숫자가 빼곡했다. 정 사모의 글씨였다. 이 목사 내외는 할머니 얘기를 한참 동안 들어주고 함께 기도한 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매서운데도 미수(米壽)의 할머니는 굳이 지팡이를 짚고서 굽은 허리로 이 목사 내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이 목사는 “이 동네 정서가 그렇다”고 했다. 이심전심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 목사가 부임할 당시 24명이었던 온혜교회 성도는 현재 50명 안팎에 이른다. 그 이면에는 성도와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섬길 줄 아는 이 목사 부부의 배려가 있었다.

온혜교회의 원로장로 시무장로 피택장로 등 4명의 장로 모두가 퇴계의 후손이다. 이들 중 원로·시무장로 3명은 올 초부터 교회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이 목사의 ‘섬김 설교’에 장로들이 결단을 내린 것. 교회 주방에 들어온 이 목사를, 여 성도들이 펄쩍 뛰면서 쫓아냈던 동네 정서를 감안하면 장로들의 화장실 청소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이 목사는 귀띔했다. 온혜교회는 어느새 따뜻한 은혜를 나누는 교회로 자리 잡았다.

안동=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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