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사’자 직업 기사의 사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세월 따라 직업 선호가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 초반 외교관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고교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 한 토막. 사촌오빠가 외무고시에 합격하자 연예계 채홍사로 유명했던 K씨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마포의 한 호텔에 갔더니 지금은 유명배우가 된 20대의 M양이 기다리고 있더란다.

사법시험이나 외시에 합격하는 게 신분상승의 초고속 사다리이던 시절이다 보니 개천의 용이든 합격증 한 장 따면 신붓감들이 돈 싸 들고 줄을 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의사와 결혼하려면 열쇠 3개(집, 차, 병원)는 혼수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빈말은 아니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뒤에는 안정적인 직업이 인기를 끌었다. 1998년 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15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직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교사와 공무원이 1위를 차지했고, 자영업자가 뒤를 이었다. 최근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결혼정보업체의 이상적인 배우자상 조사에서도 공무원, 공사 직원이 몇 년째 1위다.

엊그제 고용정보원이 국내 621개 직업 종사자 1만9127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위가 판사, 2위 도선사, 3위 목사 순이다. 상위 3개 모두 ‘사’자 직업이지만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사’자 직업들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의사는 21위, 검사 37위, 약사 39위, 변호사 74위로 뚝 떨어졌다. 배의 입출항로를 안내하는 도선사는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5년 평균 연봉이 1억3310만원으로 기업 임원 다음으로 높으니 그럴 만도 했다. 판사와 목사가 상위를 차지한 걸 보면 행복은 물질 순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시대에 쥐꼬리 월급이라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하려나.

이명희 논설위원,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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