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세월호와 기간제 교사 기사의 사진
세월호 참사 때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기억하는 희생된 교사들의 마지막 모습은 살신성인 그 자체였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교사들은 생사가 갈리는 급박함 속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시간조차 아까워 맨몸으로 난간에 매달린 채 제자들을 탈출시켰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학생들에게 망설임 없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우리를 버려두고 가는 선생님은 단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2학년 7반과 3반 담임이었던 이지혜, 김초원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교사는 당시 탈출이 쉬웠던 5층에 있었으나 아래층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선실로 내려갔다가 구명조끼도 없이 4층 객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5층에 머물던 김 교사도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4층에서 희생됐다. 두 여교사의 헌신이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신분 때문이었다. 이들은 정규직 교육공무원이 아닌 기간제 교사였다.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담임까지 맡으며 정규직 교사들과 똑같이 일해 왔으나 늘 구분됐다. 수학여행에 나서면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다. 정규직 교사들은 상해보험에 가입했지만 이들은 보험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간제 교사의 굴레는 죽어서도 못 벗어났다. 죽음도 비정규직의 강고함을 이기지 못했다. 누구 못지않게 ‘의로운 행동’을 했음에도 ‘의로운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수학여행에 동행한 단원고 교원은 모두 12명(시신 미수습 2명), 이 중 구조된 후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을 제외한 7명은 모두 순직 처리됐다. 그러나 두 교사는 순직 여부를 가리는 심사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공무원연금법상 교육공무원이 아닌 민간 근로자는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오던 날 김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오열했다. “제자를 살리려다 죽은 우리 딸, 기간제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게 너무 원통합니다.” 유족들은 지난 3년간 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반응은 너무 찼다. 보상을 받지 않을 테니 순직 인정만이라도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거부됐다. 유족들은 거창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딸들이 아이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교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뿐이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이들의 순직인정 촉구 결의안을 국회의원 75명의 서명을 받아 제안했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윤 의원 측은 “당시 정부여당이 반대해 진척이 없었다”며 “이제 세월호가 인양된 만큼 다시 한번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세월호 인양은 사건을 완결지을 수 있는 변곡점이다. 시신 미수습 가족에게는 피붙이를 찾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무성했던 논란과 의혹에 대해서는 진실 규명의 가능성을 높였다.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어두운 장막을 말갛게 걷어내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 거대 담론에 견주면 기간제 교사의 순직 여부는 사소한 문제일지 모른다. 법률과 규정에 따라 처리한 일을 침소봉대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죽어서 더 외로운 죽음을 외면하면서 세월호의 교훈인 생명의 존엄을 외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의 불행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길은 함께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라고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말한다. 이때의 슬픔은 애도에 그치지 않는다. 상대를 이해하는 공감의 발현이고 그 대상에는 당연히 기간제 교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로운 죽음마저 위계를 따지는 나라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따진다는 것은 허망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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