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 따른 의학연구·신약개발은 필수” 기사의 사진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론다 스탠포드대 교수
“남녀 간 성차이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의 특성과 치료법이 다르기 때문에, 성차이에 따른 의학 연구 및 신약개발이 필수입니다. 의학에서의 ‘젠더혁신’은 생과 사의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한국여성과총 젠더혁신연구센터(센터장 백희영) 설립 1주년 기념포럼에 연사로 초청되어 한국을 방문한 젠더 혁신 연구 분야 석학 론다 쉬빙어(Londa Schiebinger) 스탠포드대학 석좌교수는 의학 분야에서 ‘젠더(Gender)’ 연구가 필요한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젠더 의학(‘성차의학’이라고도 일컬음)이 생소한 학문 분야다. 성차의학은 여성과 남성 차이를 의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성차의학 개념을 국내에 도입해 의학 분야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론다 쉬빙어 교수와 김 교수에게 우리 사회에서 젠더 의학 연구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들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젠더 의학 연구가 활발하다. 론다 교수는 “스탠포드에서는 의대 교수들의 약 20%가 젠더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연구자들이 젠더 분석을 연구에 적용하도록 필수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학과 교육과정에서 성차이에 입각한 의학교육, 그리고 임상시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성별 차이에 입각한 의학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바로 각종 의약품 안전성과 관련한 사고가 발생하면서부터다. 론다 교수는 “지난 1997년부터 2000년도 사이에 10개의 의약품이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를 일으켜 회수되는 일이 발생했다”며 “10개 중 8개의 약이 여성에게서 더욱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의 임상시험 단계에서 성차이에 입각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그는 꼬집었다. 론다 교수는 “신약개발 과정에서 수컷과 암컷쥐를 구분해 사용해야 하는데, 수컷쥐만 사용하고 암컷쥐를 사용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며 “다른 성의 쥐를 실험에 사용하지 않으면 신약개발의 과학적 검증 과정에서 큰 발견을 놓치게 된다. 정확한 연구를 위해 암컷쥐와 수컷쥐에서의 의약품 안전성 검증이 세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는 나아가 심각한 인명피해를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불면증치료제인 ‘스틸녹스’의 경우 남성과 여성에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용량을 복용한다고 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에서 약효차이가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수면제를 복용하고 반수면상태로 운전을 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론다 교수는 “정부가 수면제 복용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자 여성의 약을 남성의 절반 용량으로 처방을 다르게 내리도록 조치했다”며 “이후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지난해 1월부터 모든 의학 연구의 실험 초기 단계에서부터 수컷 쥐와 암컷 쥐를 함께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NIH 내 ‘The Office of Research on Women Health(ORWH)’가 개설돼 의학 분야에서 젠더를 고려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여의사를 중심으로 성차의학에 대한 연구그룹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이 그룹에는 감염내과, 소화기내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분야에서 여자교수와 남자교수가 참가하고 있다. 이 모임은 이제 시작이며 각 분야에서 성차연구 측면의 연구주제를 잡으려고 문헌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의과대학 중개의학대학원 과정에 의과학에서의 젠더 연구 과목이 개설돼 12명의 의과대학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다들 젠더 의학 연구에 대해 생소해했지만, 점차 각종 질환에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함을 깨닫고 있다. 앞으로 이 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론다 교수는 “폭탄이 터지고 나서 깨달으면 늦다. 이제부터라도 성차의학에 입각한 의학 연구 수행이 필요하다. 성차의학 연구는 의약품 안전성의 이슈와도 직결된다. 의학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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