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미나] 123 프로젝트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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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혼자 남을 남편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글을 써내려갔다. 제목은 ‘내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남편을 향한 마지막 러브레터이자 누군가를 위한, ‘남편소개서’였다. “지난 26년간 이 특별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한 나는, 또 다른 26년도 그와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2015년 9월 늦은 밤 아내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복부 오른쪽 아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은 진단 결과 난소암이었다. 그리고 꼬박 1년6개월을 앓았다.

칼럼은 담담하게 이어진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건 쉬운 일이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키 178㎝, 몸무게 72.5㎏, 희끗희끗한 머리에 적갈색 눈동자. 젊은 아들이 옷을 빌려 입을 정도의 패션 센스, 열아홉 살 딸이 콘서트에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남자 1순위,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여행친구, 벌써부터 그리울 만큼 잘생겼다고도 제가 말했었나요? 이 선물을 밸런타인데이에 준비하고 있어요.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 내 남편을 발견하고 러브스토리를 시작하길 바랄게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동화작가 에이미 클라우즈 로즌솔이 뉴욕타임스(NYT)에 남긴 이 칼럼은 전 세계에 알려지며 애잔한 감동을 줬다. 그리고 칼럼이 공개된 지 열흘 뒤인 13일, 로즌솔은 사랑하는 남편 제이슨과 두 아들 저스틴, 마일스, 딸 패리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로즌솔은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지난해 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예컨대 지난해 12월 3일, 로즌솔은 SNS에 하나의 놀이를 시작한다. ‘123프로젝트’다. 노트에 직접 적어 공개한 일종의 선언문에는 “매일 오후 1시23분에 어떤 새로운 세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다”고 적혀 있다. 매일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남겨보겠다는 도전이었다. 이런 식이다. “새로운 날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 스크래블(보드게임의 종류), 커피 그리고 책.”(14일째) “삶을 지켜내는 진정한 세 가지, 공동체, 보드카, 사랑.”(21일째)

‘묘비를 재밌게 꾸미는 방법 세 가지’나 ‘당신이 만들 법한 크리스마스트리 모양 세 가지’같이 재치 있는 내용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로즌솔은 직접 글귀와 그림, 사진과 영상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8일째, ‘123일까지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는 글이 올라왔다. 병세가 악화된 것을 이때쯤 스스로 느꼈으리라.

123프로젝트는 61일째에 멈췄다. 2월 1일이다. 로즌솔의 필체는 처음보다 많이 흐트러졌다. 그럼에도 문장 사이에선 삶을 향한 의지가 읽힌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까 기대감에 부풀었어요. 하나 최근 암세포는 무례하게도 저를 덮쳤고 에너지와 집중력도 빼앗아갔어요. 오후 1시23분 마감을 지키기 어렵게 말이죠. 잠시 이 프로젝트를 쉬어 보려 해요. 집중해야 할 것들,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더 남았거든요.”

이렇게 123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는 듯했다. 로즌솔은 이후 자신의 마지막 글인 ‘남편을 위한 공개 구혼 칼럼’을 집필했다. 애달픈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을 그 정성의 크기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그러던 지난 21일, 딸 패리스가 123프로젝트를 다시 잇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1시23분,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123일째 되는 날까지 엄마가 사랑한 것을 사진에 담아 공개하겠다고 한다. 71일째인 29일엔 아홉 살 꼬마시절 엄마의 흑백사진과 아홉 살 때 찍은 자신의 컬러 사진을 나란히 공개했다. 그리고 로즌솔이 좋아하던 의자, 목욕하던 욕조, 자주 듣던 음악…. 이렇게 모녀의 추억은 한 장씩 더해져 가고 있다. 로즌솔의 부재에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이 사뭇 아름답다.

이 죽음 앞에서 숙연해진 나는 동시에 그가 남기고 간 인생을 한 장 한 장 더듬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후 1시23분. 하루 절반을 막 넘긴 이 시간에 가끔은 로즌솔이 보인 삶을 향한 의지가 떠오를 듯싶다.

흔히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한다. 나와 내 주변은 책의 어떤 장을 쓰고 있는지, 또는 다시 들춰 보고 미소 짓고 있는지 상상해 본다. 더하거나 살짝 지워버리고 싶은 대목도 되새겨본다. 어김없이 봄이 왔다. 지독한 추위를 이겨낸 나와 당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한껏 기대되는 봄이다. 이 책을 아름답게 완성해보자 다짐해본다. 김미나 국제부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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